[만물상] 옥중의 연쇄살인범

조선일보
입력 2019.09.20 03:16

작년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은 살인죄로 수감된 범인이 총 일곱 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형사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실제로 부산에서 있었던 사건을 기초로 만들었다. 이런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는데, 미제 사건을 해결하도록 돕는 대신 감형(減刑)이나 교도소 내 편의를 봐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47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제이크 버드는 자신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44명을 더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살인범의 진술을 바탕으로 11건의 미제 사건을 해결했고 버드는 그것을 이유로 사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2년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만물상] 옥중의 연쇄살인범
▶실제로 어떤 강력범이 붙잡히면 형사들은 범행 수법이 비슷한 과거 미제 사건의 동일범이 아닌지부터 따져본다. 미국 시애틀 경찰은 1987년 65세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당시 49세이던 새뮤얼 에번스를 체포했다. 추가 수사를 통해 이전에 저지른 살인과 강도, 화폐 위조 혐의까지 밝혀냈으나 그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1968년과 1972년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기소할 수 없었다. 2010년이 돼서야 경찰은 증거물에 남아있던 DNA 분석을 통해 23년째 수감 중이던 그를 추가 기소했고, 이로써 시애틀의 가장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1994년 다른 범행으로 붙잡혀 부산교도소에서 무기 복역 중이라고 경찰이 밝혔다. 연인원 200만명 가까운 경찰력을 투입하고도 해결하지 못한 이 사건 역시 DNA 분석으로 용의자를 찾아냈다. 그런데 그가 이미 25년 전 붙잡혀 감옥에 있었다니 허탈한 결말이다.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화성 용의자 DNA도 이미 확보했을 테니 좀 더 일찍 대조해 볼 수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2004년 경찰에 붙잡힌 뒤 "화성 연쇄 살인사건 범인은 다른 사건으로 감옥에 있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이번에 찾아낸 용의자가 진범이라면 유영철의 예상이 맞는 셈이다. 화성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제목이 '살인의 추억'인 것도 연쇄살인범의 중독적 범죄 행각을 뜻한다. 이 영화는 은퇴한 형사가 우연히 새로운 단서를 찾아낸 뒤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끝난다. 교도소에서도 교정(矯正) 차원에서 범죄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있다. 용의자도 그 장면을 보고 움찔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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