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정권 실세의 '갑툭튀' 정책

입력 2019.09.20 03:14

채성진 산업1부 차장
채성진 산업1부 차장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당정협의를 갖고 전·월세 임차인에게도 계약갱신요구권(청구권)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온 18일 오전, 주택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주요 관계자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담당자도 있었고, "주택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우리와 협의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이도 있었다. 국토부와 당정 간 사전 협의가 일절 없었다는 얘기였다.

전·월세 계약갱신요구권은 임대계약이 끝난 이후 세입자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다. 국민 주거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국토부와 한마디 협의도 없이 사법개혁 당정협의에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한 것에 대해 부동산 업계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전국적으로 520만채의 임대주택과 850만명의 임차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개업소·인테리어업계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여파도 만만찮다. 갑자기 뚝딱 내놓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전세금 급등의 부작용, 임대소득에 의지해 사는 은퇴 세대를 위한 보완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발표가 앞섰다는 지적이었다. '딴생각'이 없었다면 설익은 제도를 서둘러 내놓았겠느냐며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이벤트" "'조국 논란'을 물타기 하려는 꼼수"라는 해석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토부는 이날 오후 4시쯤 1장짜리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국정 과제 일환으로 추진 여부를 발표한 바 있고, 도입 필요성은 관계 부처 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다. 향후 국회 개정 논의는 관계 기관 간 충분한 협의하에 추진될 예정"이라는 두 문장이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당정에 패싱 당한 국토부가 '정신 승리'를 주장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토부는 그동안 '실세 장관'이 이끄는 '실세 부처'로 주목받았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김현미 장관은 최근 분양가 상한제 추진 과정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맞짱'을 뜨며 "과연 세구나"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초(超)실세' 장관을 새 수장으로 맞은 법무부에 '패싱 수모'를 당했다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당정이 계약갱신요구권 법제화에 속도전을 벌일 경우 제대로 된 정책 수립이 가능하겠냐"고 지적했다. 유관 부처가 폭넓게 참여해 전·월세 수요와 공급, 경제 상황을 살피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과 보완책을 조율해야 하는데, '잿밥'에 눈이 멀어 급조하다 보면 시장 혼란을 키우고 '서민 주거 안정' 목표 달성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란 경고였다. '역대 최대 불통(不通) 정부'라는 비판을 받는 현 정부가 우이독경(牛耳讀經) 사례를 또 하나 추가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