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한국

입력 2019.09.20 03:15

美 "어느 쪽 편 들지 않겠다"… 실제론 일본에 더 우호적
北·中에 접근, 미국엔 거리… 이런 외교로 동맹 와해 가속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지난 7월 초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비롯한 한국 실무자들이 차례로 들이닥쳐 바람처럼 워싱턴을 휘젓고 갔다. 김 차장의 '스타일'에 대한 뒷말이 먼지처럼 남았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일 갈등이 본격화한 직후였다.

그달 말 워싱턴의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는 일본 석좌를 새로 만들어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앉혔다. 백악관에서 갓 나온 트럼프의 외교안보팀 최고위 참모를 일본을 위해 일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워싱턴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한국은 일 터지면 갑자기 나타나 바람만 일으키고 떠나고, 일본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스며든다.

미국 외교안보계의 '지일파' 거물들은 원래 워싱턴의 일부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들이 일본 입장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도 잊게 된다. 워싱턴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회장은 데니스 블레어 전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다. 그가 동북아 안보 관련 브리핑을 하면 미국 기자들도 온다. 얼마 전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회의에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자유와 존엄과 인권의 기치를 높이 든 자유세계의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한·일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일본 측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더 많다. 몇몇 워싱턴 전문가들은 일본이 "오로지 미국뿐"이란 태도로 동맹 외교를 하며 워싱턴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온 덕이라고 했다.

반면 워싱턴은 한국에 대해선 그런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맹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워싱턴은 '미·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한국의 다짐을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얘기로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북 대화에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도 역시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은 미·일을 더 강하게 묶어준다. 일본은 중국의 급부상이 냉전 시대 소련이 가했던 위협 이상의 도전이라는 미국의 우려에 공감한다. 그래서 정치·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미국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중국 위협에 대해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의 만류에도 중국 천안문 망루 위에 올라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 데서 워싱턴은 '미국과 거리를 두고 싶은 한국'을 본다.

최근 미국의 또 하나의 안보 우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다. 미 국방부 백서는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닉슨 거꾸로 따라 하기(Reverse Nixon)' 카드를 쓸 가능성을 우려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중공과의 극적인 관계개선을 통해 구소련을 몰아붙였듯, 러시아가 중국과 밀착해 미국 리더십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7월 중·러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을 때 미국은 중·러 연대의 악몽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그래서 미국은 더욱더 동북아에서 일본을 필요로 한다.

곧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긴밀한 동맹'이란 수사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서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한, 언젠가는 와해로 이어질 동맹의 균열을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한·일 갈등에서 미국을 원군으로 얻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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