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으로 묶인 처제 시신…이춘재의 ‘1994년 청주 사건’, '화성 사건' 판박이?

입력 2019.09.19 18:13 | 수정 2019.09.19 18:22

사건 발생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는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무기수이다. 당시 이춘재의 범행 수법은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12월 화성군내 청장년들로 구성된 자율기동순찰대 대원들이 태안읍 진안1리 마을입구에 설치한 방범 초소 주변을 경비하고 있다. /조선DB
1988년 12월 화성군내 청장년들로 구성된 자율기동순찰대 대원들이 태안읍 진안1리 마을입구에 설치한 방범 초소 주변을 경비하고 있다. /조선DB
청주 사건은 1994년 1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당시 31세였던 이춘재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거주 중이었다. 이곳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마지막 10번째 사건이 발생한 경기 화성군 동탄면(옛 주소) 인근에서 90㎞ 정도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다.

이춘재는 사건 당일 오후 7시쯤 평소 자신을 믿고 따르던 처제 이모(당시 20세)씨를 집으로 불러 음료에 수면제를 타 먹인 뒤 성폭행했다. 이씨가 잠에서 깨어나 성폭행 사실을 깨닫고 울자 이춘재는 둔기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이춘재는 시신을 자신의 오토바이에 실어 자신의 집에서 약 800m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버리고, 이를 파란색 천막으로 덮어놨다.

이춘재는 당시 수사당국에 "지난해 가정불화로 아내가 가출해 혼자 지내는데, 처제가 찾아와 마구 비난해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처제의 시신은 다음날 철물점 주인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당시 관할인 충북 청주서부경찰서는 현장에 출동해 이춘재를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조사 도중 혐의를 인정했다가 돌연 범행 일체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범행을 입증할 추가 단서를 찾던 경찰은 현장탐문을 하던 중 인근 주민으로부터 사건 당일 새벽까지 물소리가 났다는 증언을 얻었고, 이를 토대로 욕실 세탁기 밑에 받쳐놓은 장판지 조각에서 희미한 혈흔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혈흔에서 검출된 유전자(DNA)는 피해자의 것과 일치했다고 한다.

1994년 충북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이춘재가 구속되기 전 경찰서에 붙잡혀 있는 모습. /KBS 캡처
1994년 충북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이춘재가 구속되기 전 경찰서에 붙잡혀 있는 모습. /KBS 캡처
살인, 강간, 사체유기 등 혐의로 법원에 넘겨진 이춘재는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1, 2심 재판부는 "반인륜적 범죄로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면서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점과 범행에 대해 뉘우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5년 1월 "원심은 피고인이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인 점으로 미뤄 계획적인 범행으로 인정했으나 살인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같은 해 대법원은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이춘재의 범행 수법은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었다.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은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에도 시신의 손과 발은 스타킹이나 속옷 등으로 결박돼 있었다.

성폭행을 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이춘재는 처제를 살해한 후 시신을 집에서 약 800m 떨어진 곳에 천막으로 덮어 은폐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도 시신들은 대부분 범행 현장 인근인 농수로나 축대, 야산으로 옮겨 버려졌고, 이 역시 볏짚 등으로 덮여 있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