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선장의 狂氣… 포경선을 파멸의 바닷속으로

입력 2019.09.19 03:13

올해 탄생 200주년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요즘 더 유효" 호평
소설 속 에이해브 선장, 복수에 눈 멀어 흰고래 '모비 딕' 사냥
不通·집착·광기, 미국 리더십 풍자… 한국 현실 짙게 오버랩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올해로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1819~ 1891)이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지난 8월 1일 멜빌의 200번째 생일 즈음에 영어권 주요 언론에선 그의 문학을 재조명하는 지면을 저마다 꾸몄다. 필자는 달라도 결론은 비슷했다. '멜빌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됐지만, 그의 문학은 지금 더 유효하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특히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이 1851년에 출간됐지만, 오늘날 미국을 비유한 소설로 읽을 만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을 꼬집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모비 딕'은 19세기 미국의 포경선을 통해 인간의 고래 사냥을 다룬 소설이다. 그 당시 포경업은 서양 사회의 생필품 생산을 밑받침했다. 고래의 몸에서 짜낸 기름으로 사람들은 램프를 켰고, 비누와 고급 향수를 제조했다. 고래 수염은 여인들의 코르셋 재료였고, 우산과 솔빗 제작에 사용됐다. 소설 '모비 딕'은 오대양을 누비는 포경선을 통해 초강대국 미국의 형성을 암시했다. 하지만 서양 제국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를 일찌감치 비판했다. 포경선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선장과 일등 항해사는 백인이지만,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고래를 해체하는 선원들은 세계 곳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다인종(多人種) 집단이었다. 소설 '모비 딕'은 대양을 무대로 방대한 분량의 서사를 풀어나간 모험소설이었을뿐더러 심해의 밑바닥을 훑듯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 형이상학 소설이기도 하다. 종교와 신화에 바탕을 둔 상징과 비유를 풍부하게 동원했다. 때로는 서술 기법으로, 때로는 연극의 독백으로, 때로는 시인의 이미지 언어로 풍성한 문체의 향연을 펼쳤기에 '미국 소설의 최고봉'이란 극찬까지 누리고 있다.

[박해현의 문학산책] 선장의 狂氣… 포경선을 파멸의 바닷속으로
/일러스트=이철원
이 소설 제목은 고래 이름이다. 킬리만자로처럼 웅장한 덩치에 만년설처럼 하얀 향유고래가 뱃사람들 사이에서 모비 딕으로 불리며 신화 속의 괴물처럼 바다를 누빈다. 모비 딕의 맞상대가 되는 인간은 40년 넘게 포경선을 탄 선장 에이해브(Ahab)다. 기독교 성경에 등장한 폭군 아합에서 따온 이름이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으려다 역습을 당해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 이후 그는 기필코 복수를 하기 위해 모비딕을 추적하는 집념으로 살아간다. 그의 얼굴은 음울하고 눈빛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포경선과 선원들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비 딕을 쫓아 무리한 항해를 계속한다. 결국 모비 딕과 맞닥뜨려 최후의 일전을 벌인 뒤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포경선도 고래에 받혀 침몰하고 만다. 이 소설의 화자 '나'를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수장(水葬)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요즘 미국에선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에 비교된다. 불법 이민을 막겠다는 구실로 국경 장벽을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집착이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다문화 사회 내부에서 인종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국가의 침몰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멜빌 탄생 200주년을 맞아 최근 황유원 시인이 새롭게 우리말로 번역한 '모비 딕'을 펼치면 에이해브의 육성이 이렇게 전달된다. '나를 완전히 망가뜨려서 영원히 가련한 절름발이 느림보로 만들어버린 게 그 망할 놈의 흰 고래지!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곶을 돌고, 조류가 소용돌이치는 노르웨이의 앞바다를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녀석을 쫓아갈 것'이라며 선원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다. 모비 딕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선원에겐 금화를 포상금으로 내놓겠다고 한다. 선원들은 그의 광기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금화의 유혹뿐 아니라 집념 어린 선동에 서서히 중독돼 두려움을 잊으며 모비 딕 사냥에 동참한다.

이 소설은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고 하는 주인공 '나'의 고래 사냥 회상으로 전개된다. 그 화자가 볼 때 에이해브 선장은 복수의 집착이 너무 심해진 나머지 자기 망상에 빠져 제 영혼을 훼손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불꽃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를 언급한다. 신이 내린 형벌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아 먹힌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복수에 함몰된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겹쳐진다. '그는 열렬한 생각으로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로 만들어버렸고, 독수리는 그 심장을 영원히 쪼아 먹는다. 그가 탄생시킨 생명체는 바로 그 독수리였다'라고 한다. 선장이 집착 때문에 스스로 광기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 대목을 읽다가 가슴이 아팠다. 19세기 미국 소설을 읽다가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권의 자해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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