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1년...깜깜한 이산상봉, 北미사일 도발만 늘었다

입력 2019.09.14 08:41 | 수정 2019.09.14 08:52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작년 9월 19일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하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평양선언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 터전으로 만들기로 하고 남북 교류와 협력을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군사 당국은 두 정상의 합의에 기초해 군사적 긴장을 줄이기 위한 '9·19 남북 군사합의'도 체결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두 정상이 합의했던 평양선언 이행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평양선언은 '군사적 긴장 완화' '남북 협력 증대' '이산문제 해결' '문화교류 확대' '한반도 비핵화' '김정은 서울 답방' 등 총 6개항에 걸쳐 구체적 실천 사항 13건으로 구성됐다. 그중 실천된 건 '연내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뿐이다. 그나마도 대북 제재 때문에 '착공 없는 착공식'만 열었다. 남북 환경·산림 협력 추진 노력, 방역 및 보건·의료협력 강화, 2020년 하계올림픽 공동진출 등은 부분적으로 이행됐지만 그 외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조건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정상화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소 △이산가족 화상 상봉 및 영상 편지 교환 문제 해결 △평양예술단 서울 공연 진행 △동창리 엔진 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김정은의 서울 답방 등은 지금까지도 아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평양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평양공동취재단
◇ '장밋빛' 찬란했던 9월 평양공동선언

평양선언 합의 사항 중 성사 여부에 이목이 쏠린 것은 '김정은의 연내 서울 답방'이었다. 남북 양측은 평양선언 6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가까운 시일'이라는 표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에 대해 문 대통령은 '(2018년)연내'라고 설명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국내의 찬반 논란에도 그 상징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의 답방은 성사되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는 김정은의 서울 답방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에선 김정은이 2018년엔 그의 답방이 무산됐지만 2019년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 답방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마무리되면서 김정은의 답방 가능성은 낮아진 상황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 간 합의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두 정상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면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이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기는 커녕 북한 전역에서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신형 장사정포 실험을 강행하며 북한 전역을 미사일 기지화했다.

남북 정상은 또 평양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조·미(북·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목을 빼 들고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런 부실한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평양선언 중 남북 간 협의가 비교적 쉬운 분야로 꼽혔던 '문화·예술 교류'와 '이산 가족 문제'도 답보 상태다. 작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 개최에 합의했으나 예술단은 오지 않았다. 아울러 10·4 선언 기념행사와 올해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했지만 모두 불발했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와 화상상봉·영상편지 교환도 북측의 실무회담 거부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열린 '이산가족의 날' 기념식에서 "남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보다 근본적으로, 그리고 한시라도 빠르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 대해 뜻을 모았다"면서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북미관계와 함께 남북관계도 주춤하게 되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8년 9월 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 공동취재단 영상 캡처
2018년 9월 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 공동취재단 영상 캡처
◇군사적 긴장 완화하자며 '9·19 군사합의' 체결했지만 北 올들어 잇따라 무력도발

평양선언을 발표한 2018년 9월 19일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서명했다. 군사합의서의 요지는 '상호간 적대행위 전면 중지'이다.

하지만 이같은 군사합의도 결국 공수표가 됐다는 평가다. 북한은 올 들어 10여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시험발사하며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지난 5월 이후 '북한판 이스칸데르' '북한판 에이태킴스(ATCMS)'로 불리는 탄도 미사일 2종과 400㎜급 대구경·초대형(500~600㎜급) 방사포 2종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은 이런 신형 무기들이 F-35 스텔스기들이 배치된 청주기지, 경북 성주 사드 기지, 주한 미군의 심장부인 평택·오산기지 등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황해남도 과일, 강원도 통천 일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과일과 통천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서 약속한 해상 적대행위 금지 구역 근처다. 당시 남북은 서해에선 덕적도 이북~초도 이남, 동해에선 속초 이북~통천 이남 해상에서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육상 군사훈련은 이에 해당이 안 된다고 해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 지점을 군사분계선 가까이 끌어내린 것은 대남 위협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군사합의에 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조항과 "쌍방은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조항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하지도 못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한국 정부가 용인해준 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은 "남북이 서로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수시로 쐈다면 군사합의가 실제로 파기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북한에겐 군사합의가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유효하다 주장하겠지만 사실상 파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8월 10일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실시한 2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장면을 11일 사진으로 공개했다. 군은 이 발사체를 이스칸데르급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기종으로 추정했으나,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KN-23과는 다른 신형 탄도미사일로 보인다. 사진은 이날 오후 중앙TV가 공개한 발사 장면. /조선중앙TV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8월 10일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실시한 2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장면을 11일 사진으로 공개했다. 군은 이 발사체를 이스칸데르급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기종으로 추정했으나,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KN-23과는 다른 신형 탄도미사일로 보인다. 사진은 이날 오후 중앙TV가 공개한 발사 장면. /조선중앙TV
정부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을 앞세워 적극 홍보했던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 전 실장은 "북한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이행하고 불리한 것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남북이 공동 시행에 들어가기로 한 비무장지대(DMZ)내 감시초소(GP) 철수에 대해서도 '우리의 안보 태세만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남북이 동수의 GP를 철수하기로 했는데, 애초부터 북한의 GP가 많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이 아닌 동일한 갯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의 경계 태세만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GP 파괴 현황 검증 과정에선 북측의 5개 GP 부근에서 1~2개의 파괴되지 않은 총안구(銃眼口·유사시 총포 사격을 위해 GP와 지하갱도 또는 교통호로 연결된 전투시설)가 발견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남북군사합의가 북측에 유리하게 작성됐다고 지적한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최근 미사일과 방사포를 발사한 곳을 보면 비행금지구역 때문에 우리 측 정찰자산이 탐지하기 어려운 지점"이라며 "북한은 자신의 기습공격 능력 강화를 노리며 ㎞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합의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행이 담보되지 않은 합의는 의식(ceremony)에 불과하다"며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큰 하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또 "북한이 군사합의를 한 목적은 남측의 무장해제"라면서 "미사일이나 방사포와 같은 무기 형태를 합의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계산이 다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9·19 남북 군사합의는 절름발이 합의이자 기형적인 합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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