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당연한 1등은 없다

입력 2019.09.12 03:13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S오픈 테니스 대회는 거대한 밥상이다. 2만4000여명이 들어차는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세계에서 가장 큰 테니스 경기장이고, 약 46억원인 우승 상금은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10억원 이상 많다. 야간 조명도 1970년대에 가장 먼저 도입했다. 미국의 번영으로 지은 US오픈 밥상을 요즘은 유럽이 독식한다. 특히 남자 테니스가 그렇다.

라파엘 나달의 우승으로 끝난 이번 대회에서도 유럽 강세가 두드러졌다. 남자 단식 4강 대진표엔 스페인, 러시아, 이탈리아, 불가리아 국기가 나부꼈고, 8강까지 넓히면 스위스,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있다. 반면 미국은 남자 선수 3명이 32강까지 올라가는 것에 그쳤다. 개최국 와일드카드 등을 더해 16명이 본선 무대를 밟았는데도 성적이 이렇다.

이른바 '페·나·조 시대'로 불리는 남자 테니스 황금기에서 미국은 변방이다.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 3인방이 메이저 트로피 55개를 싹쓸이하는 사이 미국은 빈손이다. 미국 선수의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03년 앤디 로딕(37·은퇴)의 US오픈이 마지막. 결승 진출도 2009년 로딕의 윔블던 이후 없다. 존 매켄로, 지미 코너스, 피트 샘프러스, 안드레 애거시 등 세계적인 스타가 즐비했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판도 변화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냉전 시대엔 미국이 서유럽과 겨루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선수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체격과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성공에 대한 갈망까지 남다른 동유럽의 기세가 무섭다. 열두 살에 독일로 테니스 유학을 간 조코비치처럼 동유럽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테니스에 인생을 건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대학 졸업 후 프로가 되는 것을 선호한다. 현재 미국 1위인 존 이스너(34·세계 20위)도 대학 나와 22세에 프로로 전향했다. 10대부터 프로에 뛰어들어 죽기 살기로 랭킹 끌어올린 유럽 선수들과 경쟁이 될 리 없다.

당연한 1등은 없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작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지만 올해는 포스트 시즌에 못 간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독일 축구대표팀은 작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에 졌고, 유럽 국가대항전인 네이션스리그에서도 2부로 강등당했다. 테니스 후발 주자 캐나다는 2007년 국립 테니스센터를 세우고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3년 전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른 밀로시 라오니치, 올해 US오픈 여자 단식에서 캐나다 최초로 우승한 비앙카 안드레스쿠가 투자의 결실이다. 1등을 하려고 발버둥 쳐야 1등이 된다. 스포츠 세계조차 이럴진대 우리는 잘 가고 있는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