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크렘린 푸틴 책상 위 서류까지 찍던 스파이 뒀다

조선일보
입력 2019.09.11 03:00

정기적으로 푸틴 만나는 러시아 관리 10년 넘게 정보원으로 활용
'러, 美대선 개입 보고서' 후 CIA, 신분노출 우려 2017년 탈출시켜

미 중앙정보국(CIA)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놓인 서류를 찍어 제공할 정도로 푸틴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러시아의 한 고위 관리를 10여년간 정보원으로 관리했지만 신분 노출을 우려해 결국 2017년 하반기에 그를 탈출시켰다고 미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9일 보도했다.

NYT는 "CIA가 중간급 관료일 때부터 관리한 이 정보원은 계속 승진해 푸틴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러시아 최고권력층의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어서 CIA의 가장 소중한 정보 자산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의 정보를 토대로, CIA는 푸틴이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을 직접 지시하고 공작을 조율했다는 결론과, 푸틴이 트럼프의 당선을 선호했고 개인적으로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의 해킹을 명령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CNN방송도 "이 자산의 탈출로 현재 미 정보 당국은 그를 대체할 정보 자산을 러시아에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크렘린궁에서 안드레이 치비스 무르만스크 주 주지사 대행을 접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크렘린궁에서 안드레이 치비스 무르만스크 주 주지사 대행을 접견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이 정보원의 존재 자체는 미 정보 당국 내에서도 최고 기밀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존 브레넌 CIA 국장은 이 러시아 정보원의 정보는 누출을 막기 위해 '일일 대통령 정보 브리핑'에서도 뺐다. 그 정보원의 정보는 별도로 밀봉된 보고서에 담아 오바마에게 전달했다.

그의 탈출 배경으로, CNN방송은 "2017년 초 미 정보 당국이 '푸틴이 직접 미 대선 개입을 지시했다'는 보고서를 낸 뒤, 이 정보 자산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또 2017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제공한 이슬람 테러집단 IS 정보를 공개하고, 같은 해 7월 트럼프가 푸틴과 배석자 없이 둘만 만나고 통역의 노트까지 압수하면서 미 정보 관리들 간에 이 러시아 정보원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CIA는 '탈출(extraction)' '귀환(exfiltration)'이라 부르는 작전을 실행했다. 당시 CIA 국장은 현재 국무장관인 마이크 폼페이오였다.

이 러시아 관리의 정보가 워낙 고급이다 보니, 미 정보 당국은 신뢰성을 의심해 그가 수년 전 제공한 정보의 진위(眞僞)가 이후 어떻게 판명됐는지 재평가하기도 했다. 또 그가 '가족의 안전'을 이유로 처음에 CIA의 탈출 제의를 거절했을 때에는, CIA에선 그가 '이중첩자'로 변질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NYT는 "그러나 그가 탈출한 뒤 미 정보기관은 작년 미 중간선거에서 러시아가 개입한 정도나, 러시아의 2020년 미 대선 개입 계획에 대해선 정보가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구(舊)소련의 비밀경찰·첩보기관인 KGB(국가보안위원회) 간부 출신인 푸틴은 CIA 공작에 매우 민감해, 소수의 최측근에게만 속내를 드러내고 전자통신 수단의 사용을 피할 정도로 보안에 엄격하다.

과거 냉전 시절, 서방과 소련 간에는 최고 기밀을 접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상대 진영의 간첩으로 활약한 사례가 많았다. 1950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으로 영국 정보기관 MI6와 외교부에서 근무하던 필비·매클레인 등 4인방은 미국의 CIA, 국무부 등과 접촉하면서 얻게 된 6·25전쟁 관련 고급 정보를 소련에 넘겼다. 이 중엔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가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맥아더 장군에게 원폭(原爆) 사용권한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포함됐고, 이는 매클레인을 통해 소련으로 넘어갔다. 이 중 3명은 정체가 탄로 나자 소련으로 망명했다.

CIA는 이 정보원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10일 "CIA 간첩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크렘린 대통령궁의 외교정책국에서 일했던 올레그 스몰렌코프(48)로 2017년 6월쯤 부부가 세 자녀와 함께 몬테네그로로 휴가를 떠난 뒤 모두 사라졌다"고 전했다. 스몰렌코프는 푸틴의 외교정책 고위급 참모인 유리 우샤코프의 오랜 측근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CNN 등의 보도는 범죄 코미디 영화 같은 얘기로, 스몰렌코프는 하위직 관리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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