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소·부·장' 국산화 성공의 조건

조선일보
  •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2019.09.11 03:17

국산화 자체가 아니라 우리 기업의 경쟁력 지키는 게 최종 목표
중소기업, 대기업 가리지 말고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필수 소재 3개의 수출을 제한한 데에서 시작되어, 서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상대국을 배제하는 데까지 이른, 서로 "안 팔겠다" "안 사겠다"고 하는 희한한 힘겨루기에 대한 정부 대응책의 핵심은 '소재, 부품, 장비(이하 소·부·장)의 국산화'인 듯하다.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은행들까지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가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일본과 독일이 꽉 잡고 있는 '소·부·장'에서 그나마 우리나라만큼이라도 따라잡은 나라가 아직 없다. 사실 한국, 대만, 중국을 제외하면 따라잡을 생각조차 하는 나라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아직 못 하거나 또는 안 한 것이 있다면 다 이유가 있을 터이고, 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걸릴 것이라면서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적어도 일본이 '이러다가는 시장을 다 잃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껴 태도를 바꾸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다만 과거와 같은 정도의 각오와 방식으로는 같은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니,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이념이나 명분이 승할 때 흔히 생기는 '목표와 수단의 대체'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 기업,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것이지 국산화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을 이기자. 이번에는 이기자"라고 하는 극일은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압도적 명분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너무 높다.

수요 기업에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채택을 종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은 전 세계를 누비면서 가장 품질과 성능이 좋고 가격이 싼 소·부·장을 조달한다. 이 권리이자 의무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기업이 경쟁에서 이기고 생존해야 국산 소·부·장을 사 줄 수도 있고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우리 기업들의 수익력이 이미 많이 훼손되어 주가도 원화 가치도 떨어지는 등 경제 전체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수익과 생존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서 더 이상의 부담을 질 수 없는 형편이다.

"수요 기업은 대기업, 소·부·장 기업은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선입견에 사로잡혀 "중소기업 육성"으로 치환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세계적인 소·부·장 기업 중에는, 특히 장치산업이 많은 소재 분야에는 대기업도 많다.

수요 대기업이 구매를 약속해 주고 기술·자금도 지원해서 국산화를 앞당기는 상생 협력은 물론 바람직하다. 포스코를 비롯한 많은 기업의 성공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이 자발적으로 할 일이지 정부가 종용해서는 안 된다. CEO는 전 세계를 뒤져서 최선의 소·부·장을 찾아내고 싶어 해도 실무자는 검증되지 않은 국산을 쓰는 위험을 피하고 싶은 보신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경우에도 CEO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정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셋째, 소·부·장의 국산화를 다른 정책 목표의 상위에 놓고 이를 위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과도한 환경·노동 규제 등을 경쟁국 수준으로 과감하게 풀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단언컨대 R&D 예산 지원은 시작일 뿐 핵심이 아니다. 돈은 기업에 더 많다. "이번에는 이기고" 싶다면 일본보다 더 강한 규제들을 지금 당장 혁파하라. 사실은 중국 수준에 맞추는 것이 더 맞는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일본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 국산화하지 못한 소재는 대부분 정밀화학 분야인데 최근 더 강화된 화관법, 화평법 등이 목을 죄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규제 혁파를 문제가 된 3개 또는 정부가 선정한 100개의 국산화 대상 품목에만 적용해 주는,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하는 소극적인 추격 전술로는 일본에 "안 팔겠다"고 할 수 있는 품목은 영원히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지식 서비스산업과 AI 산업과 같은 소·부·장을 '만드는' 것이 아닌 분야들은 아예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규제 혁파는 전 산업에, 아직 생기지도 않은 산업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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