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 정책… 신념이 아닌 '과학'에 뿌리를 내려라

조선일보
  •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입력 2019.09.10 03:15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과학기술부의 임무와 역할에는 원자력 분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진흥시키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어제 임명된 최기영 과기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따라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 원자력 분야의 진로와 흥망성쇠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원자력 발전이 위험하며, 자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탈원전 쪽에 동참하게 됐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다른 부처라면 몰라도 적어도 과학기술을 다루는 과기부 장관은 좀 더 과학적 성찰이 담긴 답변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험이란, 또 안전이란 어떤 뜻일까. 위험은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요소이다. 안전은 위험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위험의 감당 수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그 변화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 요즘 자동차에는 브레이크 제어 장치, 에어백, 심지어 차선 이탈 경고 장치도 들어간다. 자동차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1세대 원전에서 2세대, 3세대로 진화하면서 안전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신고리 3호기 이후 우리 원전의 주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APR1400은 3세대 원전으로 중대 사고 확률이 100만분의 1, 즉 벼락에 맞아 사망할 확률보다 더 낮도록 설계됐다.

'사고 확률이 0.0001%만 있어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인이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과학자라면 다른 시각에서 얘기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걸 지향할 수는 있으나 어떤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 과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약국에서 산 약을 먹을 수 있는 건 100% 완벽한 안전이 보장돼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충분히 입증됐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있는 보일러를 보자. 보일러는 1900년대 초까지도 수많은 폭발 사고를 겪었다. 190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신발 공장에선 보일러 폭발 사고로 58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기계학회는 이런 사고를 막고자 '보일러 및 압력용기 설계 기준'을 마련했다. 이 설계 기준은 지금도 꾸준히 개정되고 있다. 덕분에 우린 아파트 한구석에 있는 보일러의 존재조차도 잊고 산다.

최 장관의 전공 분야인 인공지능(AI)의 경우에도,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며 일찌감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04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로봇(I Robot)'은 서막에 "우리는 로봇을 믿을 수 있게 설계하였는가"라며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할 명제를 던진다. 과학은 위험할 수 있는 기술을 인류에 기여하도록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의 주류인 제2세대 원전은 위험할까. 아니다. 제3세대 원전에 비해서 설계 측면에서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다. 그렇다고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체계적·과학적 관리로 안전하게 돌린다. 미국의 원전 98기는 1세대 또는 2세대 원전이고, 평균 가동연수는 39년인데도 90% 넘는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관리 잘된 원전들은 80년까지 운전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 평균 가동연수는 20년이다.

신임 최 장관은 과학자 출신이다. 그에 걸맞게 원자력 정책을 개인적 신념이나 이념이 아닌, 과학에 뿌리를 둔 합리적·이성적 판단에 따라 집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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