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에 투입하기 위해 주한미군 시설 2곳의 사업 예산 총 7050만달러(약 856억원)를 전용(轉用)하기로 한 것으로 4일(현지 시각) 확인됐다. 여기에 일본과 괌에서 전용하는 예산까지 합할 경우 미국이 장벽 건설을 위해 전용하는 군사 예산 총 36억달러(4조3207억원) 중 약 20%인 7억3352만달러(8803억원)가 한반도 주변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방부가 이날 공개한 127개 예산 전용 사업 목록에는 경기도 성남의 극비 벙커인 '탱고(TANGO) 지휘소' 관련 예산 1750만달러(210억원), 군산 공군기지 무인기 격납고 관련 예산 5300만달러(646억원) 등이 포함됐다. 미 국방부는 전날 127개 사업에서 총 36억달러를 전용해 175마일(280㎞)의 멕시코 국경장벽을 짓는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예산 전용 금액은 일본 등 주요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유사시 B-1·B-52 전략폭격기 출동 등 한반도 전력지원을 맡는 미국령 괌에서 삭감되는 금액도 8개 사업 2억5734만달러(3088억원)에 이르는 등 한국·일본·괌에서 빠져나간 예산만 7억3352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장벽 건설을 위해 전용되는 예산의 약 20%로, 한반도 유사시 대응 태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남 탱고 지휘소는 한·미 연합사령부의 전시(戰時) 지휘통제소로, 유사시엔 한·미 양국 군의 두뇌이자 심장부가 된다. 적의 핵무기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돼 있다. 한·미 양국 군은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에도 불구하고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 때까지 탱고를 계속 유지하고 시설을 개선할 계획이었다. 군산 공군기지 무인기 격납고는 MQ-1C '그레이 이글' 무인기 1개 중대(12대)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미군은 지난해 2월부터 그레이 이글을 배치 중이고 올해 초 완전 작전 운용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 삭감에 따라 본격 작전 운용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 "미측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전투 준비 태세에 영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방위비 분담금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며, 예산 전용은 해당 사업의 취소가 아닌 연기라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해외에 있는 미군기지 예산이 전용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총 19개국으로, 총 18억3675만달러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