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57] 괴물이 기어 나오는 곳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9.09.04 03:1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900만명이 넘는 병사와 800만명 가까운 민간인이 사망한 1차 세계대전. 독일은 패배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사라지고, 볼셰비키 대혁명으로 무너진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길을 선택한다. 오스만제국 영토는 갈기갈기 찢겨 오늘날 여전히 중동 국가 간 갈등 원인이 되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어놓은 전쟁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언제나 학습보다 망각을, 행복보다 파괴를 선호하는 걸까? 불과 20년 만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은 그보다 더 많은 80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 어디 그뿐일까? 유대인 대학살, 난징 대학살, 카틴 학살, 일본 731부대 생체 실험, 일본군 '위안부'…. 계몽주의와 칸트, 다빈치와 아인슈타인을 탄생시킨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짓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들 역시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주장해볼 수도 있겠다. 인류는 언제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망각의 동물이었다고. 이미 3000년 전 당시 중동과 지중해 최고 국가였던 히타이트, 우가리트, 미케네 문명 모두 오늘날 '0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는 대재앙 때문에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져버리지 않았냐고. 아니,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전쟁과 재앙의 끝없는 반복이었다고. 그렇기에 16세기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사람에게 언제나 늑대(homo homini lupus)이니 강력한 통제와 독재만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끝없는 전쟁 아니면 독재'라는 역사적 이진법을 넘어 논리와 이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세상은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과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걸까?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피눈물 나는 교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20세기 전후 '글로벌 룰' 기반 시스템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히틀러를 경험했던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후세대에 남긴 경고를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저 괴물이 기어 나온 자궁은 여전히 생산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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