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익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남부권컨소시엄허브사업단 단장

제품이 완성되려면 원재료부터 여러 단계의 가공과 변형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때마다 생산되는 중간재는 이전 단계의 중간재보다 가치(value)가 높아진다. 즉 부가가치(value added)가 발생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고 한다.

가치사슬에서 원재료에 가까운 방향을 '전방'이라고 하고, 완성품 혹은 고객에 가까울수록 '후방'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가치사슬의 맨 후방에 위치한 대기업은 공급받은 부품과 중간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생산하고, 가치사슬 상의 전방에 위치한 중소기업은 최종 완성품 업체가 필요로 하는 부품과 중간재를 생산한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경쟁력이 곧 그 나라의 산업경쟁력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부품 등 중간재의 품질과 성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기업의 제품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라나라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역량이 함께 향상돼야 한다.

기업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직원에 대한 교육이 있다. 그러나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훈련을 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교육역량, 시설과 장비 등의 인프라, 예산 등이 뒤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기업의 교육훈련을 장려하기 위해 고용보험법에 사업주가 실시하는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업주직업능력개발훈련 지원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이를 근거로 사업주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직원을 훈련시키는 경우 훈련비용을 고용보험기금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교육훈련 개발 능력 부족이나 별도의 교육인력을 갖추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직원들에게 필요한 훈련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동일한 가치사슬 상에 있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교육훈련 측면에서 진정한 '대중소상생'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 사업'이다.

컨소시엄 사업은 대기업이 공동훈련센터로서 중소기업과 협약을 체결해 우수한 커리큘럼과 훈련인프라를 통해 양질의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소요를 대신함으로써 중소기업의 부담을 최소화 해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효과적인 훈련수요 파악, 효과적인 훈련과정 개발과 운영, 대기업이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중소기업과 공유하는 등의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컨소시엄 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의 조선산업이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조선산업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은 1972년 본격적으로 대형조선소를 건설하면서부터 조선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선체 건조 과정에서 매우 두꺼운 철판을 용접해야 하는 숙련인력의 육성과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조선 3사는 자체적으로 인력양성기관을 설립해 우수인력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80~90년대를 거치면서 조선업에 대한 과잉투자와 국제경기가 맞물려 한국 조선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고,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세계적으로 조선 수요가 늘었지만 90년대 진행된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한국 조선업체는 우수기능공 부족 현상을 극심하게 겪었다. 당시 가뭄에 단비처럼 인력난을 해소하고 한국조선업을 세계 1위로 도약시킨 디딤돌이 된 것이 바로 컨소시엄사업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세계적인 경기위축의 여파로 또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됐다. 다행히 2018년을 기점으로 선박 수주량이 회복되고 조선업 세계 1위 타이틀을 되찾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업은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컨소시엄 사업은 한국 조선업의 인력난 해소와 경쟁력 향상에 다시 한번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다른 산업에 폭넓게 적용돼 대한민국 국가경쟁력 제고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