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말고 '길림'으로"

조선일보
입력 2019.09.03 03:00 | 수정 2019.09.03 14:06

충청 할머니들의 요리 방언

''고봉'말고 '길림'으로'
"소금 한 길림 한 바가지를 물에 타 넣어." "네? 뭐라고요?"

충남 교육청 평생교육원의 봉사자·사서들은 51명의 충청 할머니들이 입으로 들려주는 요리법을 채록하면서 자주 "네?"라고 되물어야만 했다. 할머니들의 감을 표현하는 오묘한 언어가 한두 개가 아니어서다. 가령 '길림'은 그릇으로 무언가를 덜 때 수북이 쌓인 부분을 깎아내면 나오는 딱 한 그릇의 정량을 일컫는다고. 반대로 이 수북한 것을 그대로 두면 '고봉'이 된다. 사전을 뒤져도 잘 안 나오는 말이다.

할머니들이 툭하면 "솥에 건그레를 올리고 푸욱 쪄"라고 할 때도 "네?" 하며 받아적는 연필을 멈춰야 했다. 건그레는 가마솥 위에 얹어놓는 막대기를 가리키는 말. 커다란 솥에 물을 팔팔 끓이고 그 위에 막대기(건그레)를 올린 다음 그 위에 찌려는 음식을 냄비에 넣어 얹으면 잘 쪄진다고 한다. 요즘 나오는 좋은 찜기를 쓰면 건그레는 굳이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넌칠넌칠'도 있다. "배추를 듬성듬성 넌칠넌칠하게 썰어라"는 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크기로 대충 어슷어슷하게 썰라는 얘기. 넓적하게도 아니고, 숭덩숭덩도 아니고, 그저 넌칠넌칠 썰어야만 한다. 넌칠넌칠은 넌칠넌칠인 것이다. 책을 기획한 충청남도 평생교육원 평생학습부 신효정 주무관과 창비교육 이혜선 편집자는 "국어사전만으로는 할머니들의 말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분들의 감과 경험, 세월의 깊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렵지만 중요했다"고 했다.

'꼬들꼬들' '꼰득꼰득' '끄들끄들' 같은 상태가 되려면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말려야 되는지도 할머니들은 감으로 답했다. "가을바람에는 하룻저녁이면 끄들끄들하게 말라." "아니, 하루 저녁은 몇 시간인데요?" "다 다르지 머. 사람마다 다르고, 재료마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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