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째 이어지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빈과일보(蘋果日報)의 발행인 라이치잉(黎智英·71·사진) 넥스트미디어그룹 회장이 '민주 투사'로 떠올랐다.

리카싱 청쿵그룹 창업자 등 홍콩 부호(富豪) 대부분이 친중(親中) 입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라이 회장은 1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거부이면서도 중국 정부에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지난달 18일에는 도심 행진에도 직접 참여했다. 빈과일보는 170만명이 참여한 시위 당일 1면에 '오늘 빅토리아공원에서 만나요'라는 문구를 내거는 등 홍콩 매체 중 반중(反中)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라이 회장은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홍콩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친중파들은 미국과 연계된 '검은손(black hand)'이란 의혹을 제기한다. 중국 환구시보는 최근 홍콩 야권 정치인들과 함께 라이 회장을 반체제 인사를 뜻하는 '4인방(Gang of Four)'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에 있는 라이의 친척들은 '조상과 국가에 대한 배신자'라며 족보에서 그를 삭제했다고도 한다. 미국 언론들은 '왜 중국에 맞서는 홍콩 갑부는 지미 라이(라이치잉)만이 유일한가'(CNN) '양심 있는 홍콩의 말썽꾼(troublemaker)'(뉴욕타임스) 등의 기사를 게재하며 그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라이 회장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이자 홍콩과 대만에 걸쳐 미디어 제국을 세운 인물이다. 라이는 1948년 중국 광둥성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듬해 공산화로 집안이 몰락하면서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기근'이 시작된 1959년 열두 살이던 그는 어선에 숨어들어 홍콩으로 밀항, 의류 공장에 취직했다.

라이 회장은 CNN 인터뷰에서 "첫날 동료가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말을 듣고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영업사원으로 성장한 그는 주식으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본 이탈리아식 피자 가게 냅킨에 적힌 '지오다노(Giordano)'라는 이름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한 라이 회장은 지오다노가 이탈리아 브랜드로 여겨지기를 기대했고, 그 전략은 먹혀들었다. 1992년 기준 지오다노는 홍콩·중국·일본·대만 등에 191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연 매출이 2억1100만달러(약 2550억원)에 달했다.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톈안먼 사태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라이 회장을 언론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홍콩과 대만에서 '넥스트미디어'라는 신문·잡지 중심 미디어 기업을 세운 라이 회장은 1990년 시사 연예 주간지 '이저우칸(壹週刊)'을 발간했다. 1994년 이저우칸 사설을 통해 톈안먼 사태의 주역인 리펑 중국 총리를 "IQ 제로인 거북이 알의 아들"이라며 비난했다. 이에 격분한 중국 정부가 본토 매장 폐쇄를 위협하자 라이 회장은 회사를 1억8700만달러(약 2260억원)에 매각하고 말았다.

이어 라이 회장은 1995년 일간지 빈과일보를 창간, 트렌드를 재빨리 읽고 저가로 시장을 공략하는 지오다노의 전략을 도입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격변기 속에서 빈과일보는 부수 2위 일간지로 성장했고, 라이 회장 개인의 자산 규모는 2008년 포브스 기준 12억달러(약 1조4500억원)까지 늘었다. 넥스트미디어는 2014년 라이 회장이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주장하던 시민들의 '우산 혁명'을 지지한 뒤로 당국의 압박을 받은 홍콩 기업들의 광고가 끊겨 일부 매체 매각을 추진하는 등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시위 국면에서 현장감 있는 보도와 뚜렷한 반중 색채 덕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넥스트미디어가 9월 2일부터 시행하는 온라인 유료 구독 서비스는 예약 가입자가 이미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홍콩 증시는 평균 4% 하락했지만 이 기업은 오히려 59%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