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니 뇌' 만들어 뇌치료 혁신… 치매 실험비용 99% 줄였다

조선일보
  • 보스턴=이정민 탐험대원
  • 취재 동행=홍준기 기자
    입력 2019.08.31 03:00

    [청년 미래탐험대 100] [35] 美 보스턴 '인조 뇌' 연구현장… 뇌가 궁금한 22세 생명공학도 이정민

    줄기세포로 '수명 8개월 뇌 '제작
    동물실험 때 발생하는 오류 줄여 뇌종양 등 약물 치료 앞당길 듯
    작은 뇌 조각이지만 자극에 반응… 구조 다 갖춘 온전한 뇌 탄생땐 윤리적인 문제 대두될 수도

    납작한 연구용 접시에 든 젤리 여섯 조각 속에 희뿌연 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하버드대 의대 산하)에서 지난 16일 만난 김두연 교수는 직경 5㎜가량의 젤리 속 덩어리를 가리키며 "이건 사람의 뇌(腦)지요. 살아 있습니다"라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인간 줄기세포를 특수한 방식으로 길러서 만들어낸 '미니 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치매에 걸린 뇌(치매 위험 인자가 있는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 만들어낸 뇌)'이지요. 8개월 동안 홀로 살아남습니다." 그는 이 작은 무언가를 뇌 오가노이드(organoid·인조 장기)라 불렀다.

    뇌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미지의 영역이라고 여겨진다. 풀기 어려운 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막대한 돈이 투입된다. 관련 연구를 하는 케빈 파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보건 비용(약 259억달러) 4분의 1 정도가 뇌에 생기는 질병과 정신과적 질환을 치료하는 데 들어간다"고 했다.

    '생각'을 정체성으로 삼는 존재답게, 인간의 뇌는 동물과 차이를 보인다. 20여년 전부터 많은 과학자가 '치매 치료의 신기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약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물에게 잘 듣는 뇌 질환 치료제가 인간에겐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인간 뇌에 직접 실험을 하기는 어렵다.

    뇌 연구 권위자인 케빈 파커(왼쪽) 하버드대 교수와 이정민 탐험대원이 지난 14일 뇌 모형과 실험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줄기세포를 단백질 젤에 섞어 분화시키는 뇌 오가노이드, 일종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뇌를 길러내는 파커 교수의 ‘뇌 칩’ 등 인조 뇌 연구는 여러 방식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뇌 연구 권위자인 케빈 파커(왼쪽) 하버드대 교수와 이정민 탐험대원이 지난 14일 뇌 모형과 실험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줄기세포를 단백질 젤에 섞어 분화시키는 뇌 오가노이드, 일종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뇌를 길러내는 파커 교수의 ‘뇌 칩’ 등 인조 뇌 연구는 여러 방식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홍준기 기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뇌 오가노이드, 즉 '몸 밖에 있는 살아 있는 뇌'다. 바이오 기술이 발달하며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렸다가 다시 특정 세포로 자라게 하는 기술도 빠르게 진전해 가능해진 일이다. 김 교수팀의 경우엔 단백질 젤에 줄기세포를 섞어 뇌 신경세포와 뉴런 등을 몸 밖에서 만들어낸다. 이미 현재 기술로 대뇌·중뇌·해마 등 뇌의 특정 부위로까지 줄기세포를 자라게 할 수 있다.

    뇌 오가노이드는 '살아 있는 뇌'에 직접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김 교수팀은 치매 치료에 쓰일 약물을 실험한다. 그는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사람 뇌에 진짜 효과가 있는 약물을 찾을 수 있고, 실험 비용도 (동물 실험보다) 거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줄며, (실험용) 쥐 수백~수천 마리의 희생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 의대 산하 브리검앤드위민스 병원 조초이펑 교수는 오가노이드로 뇌종양 치료법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뇌종양 치료 물질이 '혈액 뇌 장벽(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혈액 뇌 장벽은 중추 신경계의 뇌척수액과 외부 혈액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장벽이다. 외부 화학물질이 뇌 안에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해 뇌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때문에 치료약까지 뇌 안으로 못 들어간다. 그래서 뇌종양은 약물 치료가 어렵다. 조 교수는 뇌 오가노이드를 통한 연구를 활용해 뇌종양 약물 치료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 인간 뇌와 같은 세포라니. 게다가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가격까지 저렴하다. 획기적으로 들렸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문제가 생긴 뇌의 일부를 오가노이드로 교체하는 등의 시술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일종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뇌를 길러내는 파커 교수의 '뇌 칩' 등 인조 뇌 연구는 여러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더 먼 미래에는 '대체 뇌' 개발에 도전하는 과학자들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윤리 문제가 대두한다. 실제로 우리가 보스턴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작은 조각이긴 하지만 뇌 오가노이드는 자극에 반응하므로 일종의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뇌 오가노이드가 발달하면 실험을 위해 사고(思考)하는 어떤 존재를 만들었다가 죽게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뇌의 크기는 얼마인지에 대한 논란이 가열될 수 있다"고 했다. 뇌 구조를 다 갖춘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동물이나 인체에 이식하면, 그 존재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가 어느새 가까이 와 있는 듯 느껴졌다.

    [미탐 100 다녀왔습니다]

    실험동물들 희생에 충격… '인조 뇌'가 대안

    저는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이라는 융합 학문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뇌의 신비를 밝힘으로써 인류가 당면한 난제인 치매나 자폐증·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 내 연구에 참여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류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실험실 동물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 인간 치료엔 무용지물일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 뇌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는 '뇌 오가노이드'에 대해 들었을 때 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만난 교수님 대부분은 뇌 오가노이드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의학적 성과처럼 과학자들의 노력이 값진 결실로 이어지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탐험 후 저는 인류가 지금까지 그랬듯이 아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뇌의 비밀도 머리를 맞대어 하나씩 풀어낼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저도 열심히 힘을 보태겠습니다.

    ※ '청년 미래탐험대 100' 3차대원 오늘 접수마감

    future100.chosun.com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