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과 북, 누가 지금 '급변'하고 있나

입력 2019.08.31 03:14

동구권 붕괴 때 북한 급변 사태 구상했으나
北 핵무장 등 더 강해지고 南 흔들리는 역사의 아이러니

남주홍 경기대 명예교수·前 국정원 1차장
남주홍 경기대 명예교수·前 국정원 1차장

1989년 11월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 초 동독이 붕괴되면서 독일이 통일되자 우리는 매우 흥분했다. 이제 남은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1991년 말 구소련이 해체되고 이어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와의 국교를 정상화하자 북한도 동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리라는 기대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중심이 되어 이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했으며 북한 급변 사태 대비 계획을 구상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모두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 김일성이 "우리는 안 망해, 우린 달라"라고 큰소리친 그대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3대까지 세습되어 핵무장으로 오히려 더 강해졌고 이젠 미국과 맞상대하며 동북아 안보 구도에 게임 체인저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정반대로 좌파 정부의 대북, 대중 굴종 정책으로 외교안보적으로 심히 고립되고 더 취약해졌으며 급기야 내부적으로 보·혁 간 천하 대란이 초래된 상태이다. 즉, 사실상 총체적 자기 분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 지도부에게 '남조선의 급변 사태' 가능성까지 꿈꾸게 만든 것이다. 실로 기가 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우리가 구상했던 북 급변 사태 대비 계획은 북한이 밑으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체제 변혁(Regime Change)된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즉 북 체제를 인위적으로 전복시키고 흡수통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 체제 스스로가 생존을 위해 먼저 개혁·개방으로 일종의 레짐 체인지를 해 핵무기를 포기하고 중국식이건 베트남식이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평화 공존을 상정한 것이다. 그 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그 나름의 레짐 체인지 계획을 수립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김일성 말대로 북한은 동독과 전혀 다르고 또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흡수통일 한다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핵 해결은 협상만으로 풀기는 이미 불가능하며 어떤 형태이건 레짐 체인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한 중국 난징대 주펑 교수의 지적은 대부분의 전략 정보 전문가들에게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선 북핵 문제가 북한이 아닌 우리 체제를 먼저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실로 황당하고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북핵 협상에서 우리가 완전히 배제됨은 물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한·미·일 남방 3각을 해체하고 북·중·러 북방 3각을 강화시킨 치명적 결과를 초래해 한·미 동맹 중심의 우리 안보 시스템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미국이 이를 빌미로 앞으로 방위비 분담 압력을 더 거세게 몰아붙일 태세이고 여의치 않으면 한국군의 준비 태세와 관계없이 전시작전권의 조기 이양을 단행할 경우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북 지도부는 남한에 강력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20년 이상 장기 집권을 호언장담하자, 남한은 이미 '레짐 체인지'가 되었다고 속단하고 심지어 장차 '급변' 가능성마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미국의 제재를 당분간 견딜 수만 있다면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고 오직 체제 단속에만 진력을 다하려고 할 수 있다. 만약 내년 우리 총선에서 이해찬 대표 말대로 보수 세력이 완전히 궤멸되면 한·미 동맹도 형해화될 것이기 때문에 북 주도의 '연방제'도 가능하다고 지금 북 지도부는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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