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벽돌·스마트 텃밭… 회색도시에 초록이 움튼다

조선일보
입력 2019.08.29 03:00

'녹색 건축' - 숲처럼 나무 우거진 체험형 교실
흙 채워 풀 심을 수 있는 벽돌 등 식물 활용한 공간 디자인 각광
소규모 건물로도 확대 되는 추세 "디자인으로 친환경 구현하고파"

도시인은 자연이 그립다. 그러나 자연은 먼 곳에 있다. 녹지(綠地)는 일부러 찾아가야 누릴 수 있는 희소 자원이 돼 가고 있다.

해법으로 식물을 디자인에 활용하는 '녹색 건축'이 주목받는다. 해외에선 고층 아파트를 녹색 나무로 뒤덮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른 '보스코 베르티칼레'처럼 파격적인 사례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책꽂이 상부를 화단으로 활용한 네이버 본사 도서관 '그린 라이브러리'나 실내에 대형 수직 정원을 설치한 서울시 신청사 등이 있다.

이런 움직임이 최근에는 작은 규모 주택이나 공공 건축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완성된 건물에 식물을 장식으로 더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단계부터 공간과 식물을 불가분의 관계로 본다는 특징이 있다. 돌 틈에서 새싹이 피어나듯 회색빛 도시를 조금씩이나마 녹색으로 물들이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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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아르케이브가 서울 중화동 주택 실내에 설치한 ‘그린 월’. 총 324개의 사각형 스테인리스 주머니가 벽 앞뒤로 촘촘하게 붙어 있다. 일부 주머니는 안쪽이 뚫려 있어 빛을 투과시키며 입체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가 신경섭
건축가 남정민(OA-LAB·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은 화분처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건축 자재를 꾸준히 개발해 설계에 응용하고 있다. 유리섬유강화콘크리트(GFRC)로 만든 '리빙 포켓'은 꽃과 풀을 심을 수 있는 화분 일체형 외장재.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처음 설계한 서울 우면동 '꽃+유치원' 외벽에 썼다. 그 뒤엔 어른 주먹만 한 공간에 흙을 채워 풀 한 포기를 심도록 한 벽돌 '리빙 브릭'을 반포동 다가구주택에 활용했다. 건물주나 사용자가 아닌 이들도 식물을 품은 풍경을 바라본다. 일종의 공원이다.

식재(植栽) 가능한 보도블록 '리빙 홀', 시멘트 블록처럼 쌓아올릴 수 있는 '리빙 블록'도 연구 중이다. 남정민은 "친환경 건축은 에너지 절감이라는 공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보통이지만 디자인으로도 친환경을 구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화분 일체형 외장재 ‘리빙 포켓’에 꽃을 심은 모습.
화분 일체형 외장재 ‘리빙 포켓’에 꽃을 심은 모습. /사진가 신경섭
건축가 성소현·이태경·차지은(아르케이브)은 올 초 서울 중화동의 낡은 건물 꼭대기 층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실내에 직접 디자인한 '그린 월'(녹색의 벽)을 세웠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네모꼴 주머니 324개를 타일처럼 촘촘히 붙였더니 다락방까지 올라가는 4.5m 높이의 벽이 됐다. 일부 주머니는 화분처럼 식물을 심을 수 있고, 일부는 안이 뚫려 있어 빛을 적당히 통과시킨다.

현관문을 열면 실내 전체가 들여다보이는 공간에서 시선을 걸러줄 장치가 필요했다.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벽을 치기보다는 싱그러운 녹색을 머금는 벽을 맞춤형으로 디자인했다. 이태경 건축가는 "물·햇빛만큼 식물의 생장에 중요한 게 바람"이라며 "창문의 위치도 그린 월의 통풍을 고려해서 정했다"고 말했다.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서울 전일중학교 자연 체험형 교실 ‘마음풀’.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서울 전일중학교 자연 체험형 교실 ‘마음풀’.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은 건축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든다. 지난 5월 서울시와 라이브스케이프가 서울 전일중학교에 함께 조성한 자연 체험형 교실 '마음풀'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식물에 대해 배우는 공간과 실제로 식물을 심어볼 수 있는 숲으로 실내를 구성했다. 숲 천장에선 물이 떨어진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물이면서 빗소리를 들려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운영은 조경 디자인 회사 '마이너스플러스백'이 맡았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이니스프리 매장의 '정밀 텃밭'도 그의 작품이다. 스마트폰으로 물·바람·빛을 제어해 제철 채소를 키운다.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는 실내형 식물 공장과 달리 생물이 자라는 광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의 환유(換喩)다. 유승종은 "첨단 기술을 디자인과 통합하면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며 "자연의 긍정적 영향을 추구하는 일이 주로 지역 단위에서 이뤄졌지만 앞으론 개별 공간에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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