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파탄 난 '조국의 꿈'에 깜짝 출연한 카메오 尹

조선일보
입력 2019.08.29 03:17

개각 직전 고교 동문 술자리서 '대선 진로' 놓고 건배했던 曺
"단군 이래 최고 위선자" 비판에 일주일 새 1000만명이 등 돌려
6년 전 曺 칭송 들었던 윤석열… 결정적 길목서 등장한 배경은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8·9 개각이 발표되자 그 며칠 전 조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조씨는 "고등학교 동문 선·후배들을 만나 종류별로 소주를 마셨다"며 소주 세 병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상표를 차례로 읽으면 '대선, 진로, 좋은데이'였다. "대선 가도가 환하게 열렸다"는 뜻으로 해석될 만했다. 부산 소재 H고등학교 동문들이 법무장관 단일 후보인 조씨를 미리 축하하기 위해 가진 술자리로 짐작된다. 내친김에 "대선으로 거침없이 진군하라"는 건배사가 나왔음직하다.

조씨는 그 글에서 "고향은 원초적 힘을 준다"고도 썼다. 문재인 정권의 'PK 집권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노무현, 문재인을 이어갈 세 번째 부산 주자를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국 이름이 떠오른다.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에 수려한 용모와 화려한 언변까지. 그의 대선 후보 스펙은 가히 다이아몬드급이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를 유시민이 맡았다면, 문재인에겐 조국이 있었다. 조씨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정치적 고빗길마다 문 대통령을 감쌌다. 문 대통령의 반(反)아베 선전포고에 죽창가를 부르며 선봉에 선 것도 그였다. 문 대통령이 '조국 법무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사법 개혁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씨에게 '대선' '진로' '좋은데이' 소주 시리즈를 권하고 싶었던 건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022년 대선을 바라보며 두 사람이 함께 꾸던 꿈은 개각 20일 만에 파탄을 맞고 있다. 조국 후보자 임명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일주일 만에 42%에서 18%로 급락했다. 24%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2년 전 대선 유권자 420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약 1000만명에 해당한다. 그 정도 인원이 조 후보자에 대한 신임을 일주일 만에 거둬들인 것이다. 정치부 기자 20여 년 동안 이렇게 급격한 여론 변동은 본 기억이 없다. 2016년 탄핵에 시동을 건 태블릿 PC 문제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일주일 새 25%에서 14%로 11%포인트 하락했다. 조 후보자 딸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논란의 파괴력이 최순실 농단을 압도한 것이다. 성난 민심의 바다에 휘말린 조국호(號)는 복원력의 한계인 40도를 훨씬 넘게 기울어졌다. 침몰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지자 수십만 명이 뭉쳐서 청와대 게시판 "조국 후보자의 임명을 반드시 해주십시오" 지지 단추를 누르고, '조국 힘내세요'를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강물 흐름을 바꾸겠다고 자갈 던지는 격이다. 법무장관이든 대선 주자든 '조국 카드'는 국민 마음에서 이미 떠났다.

결말이 예고된 문재인·조국 브로맨스(브러더+로맨스) 드라마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깜짝 출연했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주문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그의 임명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검증 책임자였던 조국 민정수석도 비슷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치 못했던 거물급 카메오가 등장한 배경을 둘러싸고 추측이 분분하다. 조국 살리기에 동참해 달라는 문 감독 요청에 따른 우정 출연일까, 여권 일각에서 걱정했던 '윤석열 리스크'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걸까. 필자는 둘째 경우라고 본다. 윤 총장 스타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판단력이 평균 이상일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검찰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올려다볼 곳이 없는 명예로운 위치에 서 있다. 그가 후배 검사들을 이끌고 '단군 이래 최고 위선자'의 침몰에 동참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조국은 자신의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언을 모두 자신의 트위터에 남겨 놨다. 2013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 윤석열 검사가 출석했을 때 일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의 정당성에 의문부호를 남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그는 여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이 장면을 지켜본 조국 교수는 트위터에 "윤석열은 헌정 문란 범죄에 맞서 국록을 받은 사람이 뭘 해야 할지 잘 보여준다"고 썼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검사의 오늘 발언은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는 글도 남겼다. 그로부터 6년 후 자신이 파멸을 향해 가는 길목에 윤석열이 등장할 것도 조국은 예견했던 것일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발언이 지금은 가슴을 후벼 파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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