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장 일본 탈출기 ‘금계일기’ 광주박물관 품에

입력 2019.08.28 16:23

보물 제311호, 후손이 기탁
임진왜란 때 포로됐던 의병장 일기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의병장이 일본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돌아온 과정을 기록한 보물 제311호 ‘노인금계일기(魯認錦溪日記)’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됐다.

국립광주박물관은 28일 ‘노인금계일기’를 광주광역시에 사는 후손에게서 기탁받았다고 밝혔다. 금계일기는 의병장 노인(魯認)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명나라로 탈출한 뒤 귀국할 때까지 일본과 중국의 풍물을 기록한 일기다.

금계일기.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금계일기.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노인은 내수사별제(內需司別提)로 있다가 고향인 나주에 가 있는 동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權慄) 휘하 의병으로 활약했다. 1597년(선조 30) 8월 남원 전투에서 왜군에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일본에서 명나라 사신 임진혁(林震虩) 등과 함께 탈출을 계획해 배를 타고 중국 복건성에 도착했다. 학문에 능하고 글씨도 잘썼던 그는 중국 문인들과 교류하며, 무이산의 주자서원과 여산폭포, 임포가 살던 서호 등을 함께 다녔다. 이후 포로로 잡혀 있던 동안 알게된 왜적의 실정을 알리고,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본국으로 송환해 달라는 탄원서를 명나라에 제출, 귀국 허가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공자가 살던 옛 땅을 지나며 공자묘에 참배하고, 북경을 거쳐 돌아왔다.

금계일기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사라져 온전하지 않다. 1599년(선조 32) 2월 22일부터 그 해 6월 27일까지의 일기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일기에는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밑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부터 탈출할 때까지 우리나라 문물제도를 그들에게 소개한 내용과 그들의 풍속·습관 및 포로들에 대한 대우, 탈출 경위 등이 담겨있다. 중국에서는 그들과 생활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노인이 죽은 뒤 200년쯤 지나 후손들이 그의 일기와 시문을 모아 ‘금계집’을 냈다. 여기에는 ‘금계일기’에서 사라진 부분이 기록돼 있어 문집을 낼 때까지는 온전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금계집 권두에는 율곡 이이, 하서 김인후, 눌재 박상, 제봉 고경명과 나눈 시가 있다. 중반쯤에는 명나라 신종 황제의 조서와 선조의 교지도 실려 있다.

노인은 조선에 돌아온 후 1604년(선조 37) 통영 앞바다에 나타난 왜군을 물리치는 전과를 거뒀다. 당시 상황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당포전양승첩도(唐浦前洋勝捷圖)’에 남아 있어, 이번에 기탁받은 문화재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박물관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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