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계와 결합해 초인이 되는 공상과학물치고 해피엔딩은 드물다.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가 마침내 인간을 파멸시키고 말 거라는 우울하고도 불안한 상상 때문이다. 기계의 발달에 관한 비관적 상상이 현실이 된 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차와 기관총, 독가스 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등장했던 것이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1881~1955)는 바로 그 1차 대전 중에서도 가장 길고 참혹했던 베르됭 전투의 참호전에 투입되어 가스 공격으로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후로도 기계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페르낭 레제, 어머니와 아들, 1922년, 캔버스에 유채, 171.2×240.9cm, 바젤 미술관 소장.

레제의 '어머니와 아들'은 '성모자(聖母子)'를 연상시키는 전통적 주제지만, 그들의 몸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금속제 로봇 부품을 조립한 것처럼 기계적이다. 그는 전쟁 이전부터 피카소의 큐비즘 영향을 받아 추상적 화풍을 실험했지만, 그때도 이미 '큐비즘'이 아니라 '튜비즘'이라고 할 만큼 모든 형상을 원통형 튜브로 축소한 특징적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그는 전쟁터에서 '햇빛 속에 빛나는 75㎜ 구경 총의 약실(藥室)을 본 뒤 추상 미술을 잊었다'고 했다. 강렬하게 빛나는 튜브란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사지(死地)에서 돌아와 화업을 계속했던 레제는 반짝이는 기계들이 지배한 전쟁터 한가운데, 삶과 죽음을 가르는 끔찍한 순간에도 놀랍도록 완벽하게 기능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았던 각양각색 인간을 그리고자 했다. 기계 인간 같지만 어머니에게 꽃을 건네는 아들이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