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韓·日 갈등, 韓·美 문제로 키워… '지소미아 파기' 우선 이해당사자는 美"

조선일보
입력 2019.08.26 03:12

['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의 서명자… 백승주 의원]

일본과 정보 교류 협정을 맺자는 첫 제안은 1989년 노태우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 '지소미아' 서명 50분 남기고 체결 연기 통보
지소미아 파기는 국익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 이익을 위한 결정
美 국무부 "동북아 안보 도전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잘못 이해"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이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발표하고, 다음 날엔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관련 브리핑을 했다. "지소미아의 종료로 군사 정보 교류 부족을 우려하겠지만 '티사'(TISA, 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를 통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발(發) 안보 불안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백승주(58) 자유한국당 의원을 만난 것은 그가 바로 2014년 말 한·미·일 국방 차관의 서명으로 '티사'가 체결될 때 우리 측 서명자였기 때문이다.

"'티사'는 한·일이 직접 정보 공유를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거쳐 정보를 주고받는 체제다. 현 정권은 '티사'로도 정보 공유에 어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대(對)국민 말장난이다. '티사'로 충분했으면 왜 그 뒤 '지소미아'를 체결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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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일을 벌여 놓고 어떻게 뒷감당을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청와대가 설마 지소미아를 깰 것으로는 예측을 못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뉴스'를 덮기 위해 이런 대형 뉴스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믿고 싶지는 않다. 미국과 일본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 못 했다고 보나?

"일본 정부는 당황한 것처럼 반응했지만 사실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단지 한·일 정보 공유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안보에 결정적인 한·미 동맹을 흔들었다. 지소미아에 대한 우선 이해당사자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일 갈등을 넘어 한·미의 문제로 키운 것이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하기 전에 미국의 이해를 구했다고 했지만, 미국 측은 '거짓말'이라며 정면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국민도 속인 것이다. 청와대 발표가 있기 며칠 전 만난 해리 해리스 대사는 '지소미아가 한·일 군사 협력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믿는다. 이를 파기하려고 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나 의회 인사들도 '지소미아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미국은 대(對)중국, 동북아 전략의 일환으로 지소미아를 비중 있게 다뤄 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런 미국의 입장을 대놓고 외면한 셈이 됐다."

―청와대 실세들은 '우리도 자존심이 있다. 주권국가로서 미국의 요구대로만 따를 수 없다'라고 생각했을까?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동맹'을 맺는 것에 신경 쓰는데, 우리는 무얼 믿고 한·미 동맹에 금 가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발표에 대해 '실망' '우려' 같은 비(非)외교적인 용어로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의 안보 도전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고 보자'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일을 벌여 놓고 어떻게 뒷감당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많은 고민과 검토 끝에 국익(國益)에 따라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는데.

"안보 면에서 국익이란 한·미 동맹과 군사력 강화인데, 지소미아 파기가 과연 어디에 도움이 됐나. 경제적으로도 이런 파탄 국면으로 끌고 가는 게 국익인가. 청와대는 대체 무슨 국익을 말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큰소리쳤지만 일본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규제에 대해 맞대응할 경제 카드가 없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안보 카드를 꺼냈을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까지 아직 석 달의 시한이 남아 있다. 그전에 미국이 일본을 달래 문제를 풀어달라는 것인데?

"우리가 지소미아 카드를 만지작거리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문 대통령이 아베보다 트럼프와의 관계가 더 좋아야 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됐을 때 '일본의 수출 규제는 지나쳤다'고 보는 미국 조야 인사들이 있었지만, 이번에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하면서 미국 여론은 확실히 돌아설 것이다. 우리 의도대로 되지 않을 공산이 높다."

―우리 정부로서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는데, 야당과 보수 언론도 일단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부가 잘못 결정했는데 우리가 초당적으로 협조해줘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이번 지소미아 파기는 전혀 국익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민주연구원의 보고서처럼 내년 총선 등 국내 정치에서의 유불리를 따져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지소미아' 파기를 3년 전 지소미아가 체결 안 된 상황으로 돌아간 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체결 유지된 협정을 파기한 것은 메시지가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에 포함된 해는 2004년이다. 그전에도 일본 부품 수입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포함됐다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니까 경제 도발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로 일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보는데, 현실적으로 과연 그럴까?

"일본과 정보 교류 협정을 맺자고 처음 제안한 쪽은 1989년 노태우 정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KAL기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인 김현희를 잡는 데 일본의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때 경험으로 노태우 정부가 손을 내밀었지만 일본이 소극적이었다. 그러다가 북핵이 안보 이슈가 되면서 2010년에는 일본이 군사 정보 교류를 제안해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2012년 '지소미아' 서명 직전까지 갔다가 불발됐는데?

"차관 회의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 기습 안건으로 올려 '밀실 추진' 논란이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여당은 정치적 계산을 했다. 결국 서명 50분 남겨두고 체결 연기 통보를 했다. 외교적 결례를 한 셈이었다. 당시 이를 다뤘던 김태효 청와대 전략기획관은 경질되고, 조세영 동북아국장(현 외교 차관)은 보직에서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을 때 어떤 입장이었나?

"지소미아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인수위 기간에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북핵 이슈가 부각되면서 미국은 한·일 관계 회복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2014년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티사(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 논의가 시작됐다."

백승주 의원과 최보식 선임기자

―당시 어느 나라가 가장 적극적이었나?

"우리는 국내 반일 여론을 의식해 소극적이었고, 미국이 가장 관심이 많았다. 일본도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당시 일본 방위성 차관이 '티사' 체결을 위해 여러 번 방한했지만 내가 일본에 간 기억은 없다."

―그 뒤 2년이 더 지나 결국 '지소미아'가 체결됐는데.

"2016년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이 원했고 한·일 양국도 필요성을 인정했기에 실무 협상은 한 달도 안 걸렸다. 한민구 국방장관과 주한 일본 대사 간에 서명을 했다."

―당시 비공개로 진행해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항의하기도 했다. 지소미아는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에 이용될 뿐이고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서로 군사적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좌파 진영에서는 한·미·일 군사 공조가 이뤄지면 동북아에서의 진영 간 대결이 심화된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이들은 제주도 해군기지를 건설할 때 중국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반대했으니까."

―국정을 운영해봤고 총리까지 지낸 이해찬 대표도 '지소미아 폐기는 진작 했어야 하는 결정'이라고 했는데?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꺼냈을 때 내가 근무한 국방연구원에서 '균형자는 힘 있는 나라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가령 영국 같은 나라는 유럽에서 균형자가 될 수 있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 뒤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이 참석한 정치학자들과의 자리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가 무식해서 균형자라는 말을 썼지만 이제는 동북아 시대 평화 촉진자로 바꿨다'고 말했다. 적어도 노 대통령은 남의 말을 듣고 자기 생각이 잘못됐으면 바꿀 줄 알았다."

―지소미아가 체결됐다고 해서 정보 제공은 의무 조항이 아니다. 서로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지만, 제공하는 쪽에서는 선택적으로 줄 수 있게 돼 있다. 군사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럼에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지소미아 체결 뒤로 한·일 양국이 교류한 군사 정보는 29건이었다. 보기에 따라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지만 북한 도발과 관련된 정보 판단에서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다."

―지소미아 종료 발표 뒤 청와대 측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과 관련해 일본이 제공한 정보는 단 한 건도 의미 있는 게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는데?

"지난 7월 25일 발사체의 항적 거리를 놓고 우리 군 당국은 세 번이나 말을 바꿨다. 당시 최종 판단에 일본의 정보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떤 정보를 주고받았는지 세부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은 없는 것 같다. 청와대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군의 입장을 지켜내려는 군 수뇌부를 요즘 보기가 어렵게 됐다.

"지소미아 파기 발표가 있기 이틀 전 국회 국방위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질의하니 '여러 차원에서 신중하고 심도 깊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 '안보에 도움 된다, 안 된다는 명료한 답변을 달라'고 하니, '도움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그 자리에서 정의당의 한 의원은 '지소미아는 안보 적폐'라고 했는데?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비롯된 탄핵 국면에서 지소미아가 체결됐기에 국민 동의를 모두 얻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정경두 장관이 '당시 공군참모총장인 내게도 아무런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장관이 이런 답변을 하니 국민 보기에 민망하다."

지소미아 종료 발표 다음 날 북한은 한번 떠보듯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은 이를 한국보다 26분 먼저 발표했다. 일본은 지소미아 파기에 끄덕없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독도 방위 훈련을 결행했다. 무얼 얼마나 더 해볼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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