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흥분된 민족감정은 어느 순간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 "美에게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이 중국쪽으로 기울거란 신호로 읽혀"

입력 2019.08.24 01:45 | 수정 2019.08.25 09:32

[강천석 본지 논설고문·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前주필 대담]
- 후나바시 API 이사장
1965년 韓日은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 자세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 그 덕에 각종 장애물을 넘어 합의 이끌어내
先人들이 지혜 모아 해결해 놓은 문제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다시 열린 것이 무섭다

- 강천석 고문
한국 법원이 압류된 日기업 재산 현금화하고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실행하면 이번 사태는 정말 회복하기 힘들어
'의도하지 않았던 파국'의 역사 되풀이 않게 두 나라 정상이 사명감 갖고 즉각 대화해야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결정했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결합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미국이 한국 방위 공약을 이행하는 발판이 무너진 것이다. 북한은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지켜보고, 중국은 갈라진 한·미·일 군사협력의 틈에 쐐기를 박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일본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미국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가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격랑(激浪)은 한·일이 미래를 향한 21세기 파트너십을 선언했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무너뜨리고, 이제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체계' 붕괴 여부가 현실적 관심사가 됐다.

강천석 본지 논설고문이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API)' 이사장을 만난 것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일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가', 한·일 분쟁의 뒤편에 있는 일본 불만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다. 베이징·워싱턴 특파원으로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아사히신문 주필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 싱크탱크 API를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 정세에 정통한' 일본을 대표하는 지미파(知美派)이고, 북한 핵 문제 협상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일의 현실은 엄중(嚴重)했다. 두 나라 현실주의자가 맹목(盲目)의 내셔널리즘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지소미아가 파기되는 사태는 없으리라고 의견을 같이한 지 불과 9시간 만에 한국의 협정 파기 뉴스가 현해탄을 건너왔다. 후나바시씨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견해를 이메일로 추가로 보내왔다.

후나바시 요이치(왼쪽)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API) 이사장과 강천석 본지 논설고문이 22일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API 사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왼쪽)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API) 이사장과 강천석 본지 논설고문이 22일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API 사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강 고문은 "내셔널리즘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인의 착각과 무지"라며 한·일 양국의 지도자를 비판했다. 후나바시 이사장은 "한국이 일·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를 잘못 다루면 미국의 레드카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강천석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속도와 성질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양국 정부를 향해 '긴급 정지' 신호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독(毒)화살을 맞은 사람은 누가 어디서 쏜 화살이냐, 어떤 새의 깃털로 만든 화살이냐를 따지기 전에 화살부터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양국이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조치는 무엇인가."

후나바시 "무엇보다 일·한 양국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어떤 도전과 리스크가 있는지를 국민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 한·일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격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일·한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일본이 가해자인 것은 분명하고, '가해자-피해자'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는 추상화된다. 당사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공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나라가 미래를 함께 공유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무서운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글로벌리즘의 시대에 글로벌리즘은 풍화(風化)되고 내셔널리즘이 최강(最强)의 이데올로기로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발흥하는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누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65년 한·일 합의를 만든 사람들은 사명감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양국 정부와 국민들은 그때 그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갖가지 장애물을 넘어 합의를 만들어냈는지를 잊어버렸다.

기록을 보면, 두 나라 간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의견을 좁히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우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보류하고, 양쪽의 견해를 좁히기 힘든 문제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안(文案)을 만들어 가면서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때 뒤로 미루거나 덮었던 것들이 수십년간의 잠에서 깨어나서 양국의 안보, 전체 동아시아 안보를 뒤흔들고 있다.

당신 지적대로 정치인이 내셔널리즘을 외교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은 쉽다. 아무리 무능한 리더도 영토와 역사 문제 등 국민감정이 민감한 부분에서 쉽게 내셔널리즘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흥분한 내셔널리즘은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내셔널리즘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인의 착각과 무지일 뿐이다. 남미·중동·서남아시아·아프리카 후진국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지금 경제 선진국 한·일에서, 제 2대국이란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진짜 리더십은 내셔널리즘을 다스릴 줄 아는 리더십이다.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자기 지지자들을 먼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서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지지자를 설득해서 힘든 고비를 넘어갔다."

"똑같은 의견이다. 일·한 기본조약을 체결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전후(戰後) 일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일·한 합의였다. 개인의 청구권을 어떻게 할까. 나라의 청구권은 해결이 가능한데…. 일·한 합병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난제들을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 공감한다는 의미)'의 자세로 장애물을 치웠다.

의의(意義) 깊은 교섭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들어서서 이렇게 선인(先人)들의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 놓은 것이 다시 논란이 돼 정말 유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됐다고 결론을 냈다. 그것이 이번에 다시 무효화됐다. 2015년 정말 어렵게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 물론 여기에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이 미흡하다는 불만이 있지만 그것 역시 무효화됐다. 당시 일본에도 위안부 합의를 위험하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타결했다. 그 문제들이 판도라 상자처럼 다시 열린 것이 무섭다."

'한번 흥분된 민족감정은 어느 순간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 '美에게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이 중국쪽으로 기울거란 신호로 읽혀'
/일러스트=김성규
"노무현 정부에서 징용 배상 문제를 논의해 청구권 협정에 징용자 문제가 포함됐다고 판단해서 일정 금액을 지급한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때도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는지에 대해서는 이견(異見)도 있긴 했다. 판사나 법원에 훌륭한 외교관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했지만, 최후의 선(線)을 넘은 것은 아니다. 한국 법원이 압류된 일본 기업 재산을 현금화하는 추가적인 결정을 내리고 일본이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결정이 광범위한 범위로 실행되면 양국 관계는 물론이고 한·미·일 관계에 결정타를 날릴 것이다.

역사에는 '의도(意圖)하지 않았던 파국(破局)'이 수도 없이 되풀이됐다.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 사태 이후 북한 변수(變數), 중국 변수가 개입하면 동아시아 안보 전체가 안갯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두 나라가 대화를 통해 한국이 취할 조치, 이에 상응해 일본이 취할 조치를 협의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전후 문제의 절반이 외교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48개국이 참가해 협의했다. 미국에도 개인 청구권은 남아 있었다. 미군 포로들이 일본 기업 미쓰이에 청구했다. 그러자 미국 행정부에서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법원이 바꾸면 국제 평화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를 감안해서 판결을 내려달라고 했다. 행정부는 안전보장 문제가 있을 때는 이를 사법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했다. 문재인 정권은 장기적인 비전, 전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런 큰 정치가 문재인 정권에 보이지 않아 염려스럽다."

"월간지 문예춘추의 당신 칼럼에서 '워싱턴으로부터 한국 불요론(不要論)이 들린다'고 한 것을 보았다. 미·일 동맹 성격과 운영 방식을 보면,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 측과 협의하거나 일본 뜻을 미국에 전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한국을 향한 불만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닌가. 아니면 미·일 사이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인가.

일본 태도에는 '한국은 필요하지 않다'는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방식의 미·일 연합은 문재인 정권의 성격으로 봐서 한국을 친중(親中)쪽으로 몰아갈 위험도 있다. 일본 움직임과 미국 태도를 관련지으며 한국에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미·일 동맹이 아베 정권 등장 이후 7년 동안 해마다 강화되는 반면에 한·미 동맹은 계속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한 어느 한편을 들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군과 정보 계통은 한국의 애매한 태도에 대해서 초조해하고 짜증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 상황은 일·미·한 3개국 모두에 마이너스다. 문재인 정부가 동맹 관리와 안전 보장 문제를 더 신중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미·일 동맹만으로 가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이 북한 쪽으로 너무 경사돼 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 지소미아 문제를 잘못 다루면 미국의 레드카드가 나올 수 있다. 미국은 일·미·한 3국 관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3개국 협의 틀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하면 큰 위험이 따를 것이다.

미 백악관과 펜타곤은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를 내린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다. 중국은 삼성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일·미·한 3개국이 중국에 대항해야 하는 시점 아닌가. 미국은 세 나라가 5G 시대에 AI 분야 등에서 대(對)중국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 않느냐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더욱이 반도체는 언제든 군사 전용 가능한 것 아닌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은 분업 체계를 통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어왔다. 미국은 그런 게 없다."

"한국 독립 이후 획득한 최고의 안보 자산이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 때문에 공산체제의 위협을 이겨냈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도 그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경제와 연결돼 미들 파워(middle power)를 거쳐 선진국에 접근했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과 국민은 한·미 동맹을 공기처럼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고 얼마든지 무료로 쓸 수 있다고 본다. 공기는 희박해져야 그 소중함을 안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과의 동맹이란 자산을 잃게 된다면 고산병(高山病)을 앓게 될 것이다.

한·미 동맹은 교량(bridge)과 비슷한 것이다. 자연이 준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었기에 늘 보수하고 수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20년간 한·미 동맹이라는 다리의 보수 공사를 게을리했다. 당신이 쓴 '동맹 표류'를 보면, 1990년대 미·일 동맹이 크게 흔들리자 외부 도전으로 일본 안보가 뿌리째 흔들리던 상황이 나와 있다. 당시 일본은 '아무나 건드려도 되는 나라'였다. 지금은 미·일 동맹 현황에 만족하는가. 그렇다면 그 변화를 만들어낸 정치적 배경은 무엇인가."

"하버드대 조셉 나이 전 학장이 1990년대 국방부 차관보 시절 미국은 아시아에서 산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산소 공급 기능이 약화됐다. 트럼프 때 생긴 것이 아니라 오바마 때 세계의 경찰관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미국이 국제질서라는 공공재(公共財)를 넉넉히 공급하지 못해서 많은 나라가 숨만 쌕쌕거리는 호흡곤란 상태이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일 동맹이 표류하던 1996년 중국이 (대만 총통 선거 직전에)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 미사일이 일본 최서단의 섬으로부터 70㎞ 지점에 떨어졌다. 중국은 미·일 동맹 표류 막판에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주장해 일본을 위협했다. 일본이 반발하자 중국은 희토류 규제로 보복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미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평화를 만들자는 허황된 주장을 접지 않았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이전하겠다고 했다가 말잔치로 끝내고 주저앉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독도를 방문해서 일본 국민을 놀라게 하고, 당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가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북방열도를 방문한 것도 미·일 동맹이 표류하던 시기였다. 미·일 동맹이 흔들리자 이렇게 안보 위기가 쏟아졌다. 그래서 아베 정권은 2012년 12월 집권 초반부터 오로지 미·일 동맹 강화에 매달렸다. 집단적 자위권을 법제화하고, 이를 위해 개헌도 한다고 했다. 아베 정권이 미국의 일본 민주당 정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미·일 동맹을 안정시켰다. 그 실적이 아베의 최대 공로이고 아베의 정치 무기다."

"트럼프는 미국까지 도달하는 ICBM이 문제이지 단거리 미사일은 별것 아니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영토 대부분이 북한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동맹은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출발이다. 트럼프는 동맹의 가치를 오로지 돈 저울로만 단다. 트럼프는 가치를 공유(共有)한다는 동맹의 외투를 벗고 돈으로 환산한 국익(國益)이라는 알몸뚱이로 세계를 상대한다. 일본은 이런 트럼프의 미국에 어떻게 보조를 맞추고 있나. 미국 대통령의 이런 리더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일본 입장에서 보면 북한 핵보다 북한 미사일 위협이 더 크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가 어느 정도 그 위협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일 안보조약 5조에 의해서 센카쿠 열도를 보호한다고 했다. 일본에 크게 힘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거래하는 대통령'이다. 일본은 미군 주둔비를 75% 부담하고 있다. 얼마 전 이것도 부족하다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와서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갔다. 일본도 미군 주둔비 부담을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마치 렌털 사업(rental business)하듯이 미군 주둔비 협상을 벌이는 것은 바보 짓으로 동맹국의 신뢰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과거 중국을 봉쇄하려고만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중국의 힘을 무리하게 억제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난다고 했다. 중국이라는 대국(大國)의 부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중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자는 대중(對中) 온건론자였다. 그런데 강경론으로 크게 바뀐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쪽으로 가고,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파트너다. 당신과 일본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중국이 바뀐 것인가."

"중국은 세계의 기대와 반대로 가고 있다. 중국에 대한 기대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중국은 스탈린 체제를 닮아가고 있다. 그는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실패를 잘 알고 있다. 그런 실패를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시진핑의 비전이다. 중국은 AI, 얼굴 인식을 통해 사회를 감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5G 스탈리니즘'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의 대만 다루기, 한국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센카쿠 분쟁 때 일본에 대해 희토류를 무기화한 것을 보라. 중국이 룰(rule)을 지키도록 압박해야 한다."

"당신은 일본이 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계기로 중국의 해양(海洋) 전략이 공격적으로 바뀌거나 한반도에 반일(反日) 내셔널리즘을 내세운 정부가 들어서는 경우를 들었다. 워싱턴의 상당수 정책 입안자들도 당신과 인식을 공유해서 나온 발언인가."

"중국 문제에서 최고의 위험은 대만이다. 왜냐하면 센카쿠 열도 등에서 미국 일본과 부딪치면 중국이 대만에서 군사적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대만하고 오키나와는 연결된다. 그런 리스크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사활이 걸린 교차점이다.

한국의 통일 정부가 반일적으로 나오는 것은 먼 장래의 문제다. 양국에서는 서로 문재인과 아베 정권이 나쁘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 아닌가. 일본 민주당 정권 시절 아시아 국가끼리 협력하자고 할 때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잠자던 문제를 두드려 깨워 다시 키우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당신의 주문(注文)은 아까 밝혔다. 한·일 관계를 위해 아베 정권을 향해 주문한다면 무엇을 주문하겠는가."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 때 내셔널리스틱한 발언을 한 것은 유감이었다. 한국 국민의 감정을 생각했어야 했다. 많이 아쉽다. 그러나 아베가 일본의 우익을 가장 잘 다독거린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서 우익의 반발을 조절하는 것이 모든 정권의 가장 어려운 과제였는데 아베 정권만큼 잘 컨트롤한 정권이 없다. 아베 정권은 한국이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임을 일본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도 더 큰 목소리로 외칠 필요가 있다. 일·한은 어떤 상황에서도 협력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 아베 정권은 원칙을 확실하게 재천명해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이혼' 통지… 韓美동맹에 마이너스]

후나바시 이사장은 대담이 끝난 뒤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자, 23일 자신의 견해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일·한 양국이 군사정보 상호 제공을 위해 정식 '결혼'한 것이 2016년에 체결한 지소미아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이혼' 통지라고 할 수 있다. 이 결정은 상징적, 정치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는 '마이너스'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이 결정이 한·미 관계를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미국은 '한국이 일·미·한 3각 협력에서 벗어나 중국을 향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불신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트럼프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징용' 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면서도 비판을 꺼려 왔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미국이 일본의 편을 들고 있다'고 받아들여져 반미감정을 고조시키고 한국을 더욱 친중화(親中化)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는) 미국의 헌신이 쇠퇴해서 생긴 진공 상태에 중국 본위의 21세기 동아시아 질서 이미지가 투영되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API 이사장

1944년생. 도쿄대 교양학부 졸업. 아사히신문 워싱턴·베이징 특파원, 주필 역임 후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강천석 본지 논설고문

1948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조선일보 도쿄 특파원, 정치·사회·국제부장,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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