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을 다녀왔다… 물기운을 불로 다스리자

조선일보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19.08.24 03:00

[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고려 태조도 찜찜해한 도읍지

경기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의 모습.
/김두규 제공
경기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의 모습. /김두규 제공
점치는 방법인 주역과 사주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주역은 주(周)나라 때 만들었다 해서 주역(周易)이라 불린다. 사주는 당·송나라 때 만들어졌다. 2000년의 격차에다 내용도 전혀 다르다.

주역은 유학 경전에 포함될 만큼 수준 높은 점서이자 철학서였다. 훗날 공자·주자·정자가 내용을 풍요롭게 했다. '자연'(물·불·땅·바람 등)의 이치와 변화를 상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자(지도자)가 시대 문제를 해석·대처하게 하는 것이 주역이다.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때문에 풍수도 주역을 대폭 수용한다.

지난 9일 파주 지역 '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개방' 기념식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취해진 조치이다. 중요성 때문인지 김연철 통일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 기관장들이 개회식부터 도라산 전망대, 철거된 GP 현장, 판문점·'도보다리'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하였다. 필자도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도라산 전망대에 섰을 땐 저 멀리 북쪽 개성공단과 개성시가 보였다. 남에서 개성공단으로 흘러가는 전기 고압선도 보였다.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의실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창밖에서 북한군이 망원경으로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역적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상징화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판문점을 관통하는 철책 이북에 있는 도시가 개성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지로 정하면서도 못내 찝찝해한 '수덕불순(水德不順)의 땅'이다. 수덕불순이란 개경의 물기운(水氣)이 순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고려 말 학자 이제현은 이를 "수겸(水鉗)"으로 표현하였다. 겸(鉗)은 죄인의 목에 씌우는 형구를 말한다. 불순한 물기운이 개성을 옥죄는 형구가 된다는 뜻이다.

'수덕불순'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을 불로 데워 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불 위에 솥 없이 물이 있다면 불은 바로 꺼질 것이다. 또 중간에 솥이 있다 하더라도 불이 너무 세면 끓은 물이 넘쳐 불이 꺼지고, 끝내는 물도 증발될 것이다.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주역 '기제괘(旣濟卦)'가 말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위로는 험한 물[개성], 아래로는 불[남한의 전기 공급], 그리고 중간의 솥[판문점]으로 상징되는 물과 불의 상극 관계에 대해 주역이 제시하는 상생 해법이다. 그런데 불[火]은 주역에서 문화(문명)를 의미한다.

물과 불의 조화, 즉 평화적 공존은 정치 경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문화여야 한다는 것이 주역적 함의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잡초에 묻혀 있다. 철원에 있는 태봉 도읍지도 그 하나이다. 철원과 개성은 궁예와 왕건이 도읍지로 삼을 때 풍수적 논쟁이 많았던 곳이다.

또 판문점 가까이 실학자 박지원과 서유구의 무덤이 있다. 박지원 무덤은 북한이 왕릉 수준으로 복원해 놓았다. 박지원이 실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의도한 독자층은 왕과 사대부로서 관념적 실학자였다. 반면 서유구는 관료 학자로서 필생의 역작인 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남겼다. 왕과 지식인들이 아닌 백성의 실질적 삶을 향상시키고자 한 실천적 실학자였다. 서유구 무덤은 휴전선 남쪽 잡초에 묻혀 있으며 접근이 불가하다(파주시 진서면 금릉리 산 204).

남북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문화유적 공동 발굴과 복원이다. DMZ에 갇혀 있는 문화유적을 "남북이 공동 발굴하여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 재조명한다면 남북 간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것이다."(서호 통일부 차관) 주역은 대립적 남북한 관계를 '기제괘'로 상징화하면서 그 해법으로 불[火]을 제시한다. 불은 다름 아닌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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