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 불똥 튄 중국 운항제한

입력 2019.08.25 06:37

[주간조선]

지난 8월 12일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콩국제공항.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2일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콩국제공항.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1일 미국 뉴어크 리버티공항에서 출발한 캐세이퍼시픽 CX899편 항공기가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착륙했다. 당초 이 비행기는 미국을 출발한 뒤 러시아와 몽골, 중국 영공을 통과해 홍콩국제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돌연 항로를 바꿔 일본 간사이공항에 착륙했다.

항공기 항로변경에 앞서 지난 8월 9일 중국 민항국은 중국 영공을 통과하는 캐세이퍼시픽의 모든 항공편에서 홍콩 시위에 참가하거나 지지한 직원들을 배제할 것과 중국 영공을 통과하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신상정보를 통보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명단 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8월 11일 0시부터 모든 항공편의 중국 영공 통과를 금지한다는 엄포도 함께 놓았다. 결국 CX899편이 명령을 따르지 않자 항공편의 영공 통과를 불허한 것이다. 캐세이퍼시픽 측은 “홍콩공항 혼잡으로 승객을 태우지 않은 CX899의 항로를 변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홍콩 시위에 중국 하늘길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중국 항공당국의 눈엣가시로 전락했다. 캐세이퍼시픽항공은 홍콩에 본사를 둔 영국계 스와이어(太古)그룹에 속한 홍콩 최대 항공사다. 항공동맹체 ‘원월드’ 소속으로 캐세이퍼시픽과 중국 노선에 주력하는 캐세이드래곤(옛 드래곤에어)을 갖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하이난항공으로부터 저가항공사 ‘홍콩 익스프레스’까지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화물항공사인 ‘에어홍콩’까지 포함해 산하에 4개 항공사를 거느린 매머드급 항공사다.

캐세이퍼시픽항공에 대한 중국 항공당국의 격노는 지난 8월 5일 ‘홍콩 대파업’이 도화선이 됐다. 캐세이퍼시픽항공 소속 조종사와 승무원, 지상직원 등 30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해 이날 300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고 여행객들이 홍콩공항에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취소된 항공편 중 캐세이퍼시픽과 자회사인 캐세이드래곤의 항공편은 모두 140편에 달했다. 지난해 7400만명이 이용한 동아시아 최대 허브공항인 홍콩공항의 전례 없는 마비 사태는 중국 항공당국을 경악시키기에 이르렀다. 홍콩공항은 지난 8월 12일에도 시위대가 점거하며 전면 마비됐다.

특히 지난 7월 28일 홍콩의 폭력 시위에 캐세이퍼시픽 조종사가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건은 기름을 부었다. 조종사가 송환법 반대를 요구하며 탑승객들을 공중에서 볼모로 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급속히 번졌기 때문이다.

탑승객 정보유출 사태도 터졌다. 캐세이퍼시픽항공의 한 직원이 지난 8월 8일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열린 ‘제18회 세계 경찰 및 소방관 운동회’에 참석하기 위해 캐세이퍼시픽항공을 이용한 홍콩 경찰의 탑승정보를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인 ‘왓츠앱’에 유출한 것이다.

중국 민항국은 홍콩공항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승객들의 탑승정보를 유출한 캐세이퍼시픽에 격노했다. 8월 12일 민항국은 캐세이퍼시픽항공의 모기업인 스와이어그룹의 CEO 멀린 스와이어를 베이징 민항국으로 소환조치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날 저녁 영국 맨체스터공항을 이륙해 홍콩으로 향하던 캐세이퍼시픽 CX216편의 부기장이 운항 중인 조종석 모니터의 사진을 찍어 홍콩공항의 상황을 시위대 측에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캐세이퍼시픽 사태는 지난 8월 16일 캐세이퍼시픽 측이 칼자루를 쥔 중국 민항국의 요구에 따라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신상정보를 일괄 제출하고 최고경영진을 교체한 뒤 “홍콩 기본법과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8월 5일 홍콩 대파업으로 촉발된 전례 없는 홍콩공항 마비 사태로 중국 항공당국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로 자유롭게 연결된 공항이 중국 당국을 겨냥하는 최대 비수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홍콩공항 마비 사태에 충격을 받은 중국 민항국은 항공안전 등을 명분으로 중국 공항의 운항총량제한에도 착수했다. 지난 8월 9일 발표한 민항국의 ‘통지’에 따르면, 8월 9일부터 오는 10월 10일까지 항공사의 정기편, 부정기편을 막론하고 신규 취항과 증편 등이 일제히 금지됐다.

8월 15일부터 10월 10일까지는 기존 운항편도 일률적으로 감편한다. 감편은 여객처리량 1000만~3000만명 사이에 있는 중국 전역의 공항을 대상으로 실시되는데, 정시에 출도착하는 정시운항률이 85% 이하인 공항은 전체 운항편의 3%, 정시율 80% 이하인 공항은 전체 운항편의 5%를 일률적으로 감편하는 조치다. 칭다오, 싼야, 하이커우 등 10개 공항은 3%를 감축해야 하고, 톈진, 난징, 창춘 등 9개 공항은 5%의 항공편을 일률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감편되는 항공편은 각각 124편(85% 이하 공항), 180편(80% 이하 공항)에 달한다. 또 건국 70주년 국경절 전날까지는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국내선 항공편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인천~베이징 다싱신공항 취항 기약 못 해

홍콩공항 마비로 촉발된 운항총량제한 조치에 불똥이 튄 것은 한국 항공사다. 국내 항공사들은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 승객이 급감한 일본 노선을 대신해 중국 노선 취항을 대거 늘리려고 준비해왔다. 특히 저가항공사(LCC)들은 지난 3월 한·중 항공협정을 통해 중국행 신규 노선을 대거 배정받은 뒤 중국 취항을 서둘러왔다. 한국과 항공자유화 협정을 체결한 하이난성의 싼야와 하이커우, 산둥성의 칭다오는 한국 항공사들이 언제든지 취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싼야, 하이커우, 칭다오공항은 모두 신규 취항 금지는 물론 감편 대상에 포함됐다.

운항총량제한 조치는 항공사 국적을 불문하고 적용되는 터라 항의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중국 공항들의 정시 출도착률은 악명이 높다. 승객들을 1~2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일은 예사로 일어난다. 오는 9월 30일 베이징 다싱(大興)신공항 개항을 앞두고 기존의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서 항공편이 대거 이전해갈 예정이라 보수적으로 공역(空域)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추가됐다. 게다가 미·중 무역전쟁 등 불안한 외부요인과 치열한 경쟁으로 중국 국유 항공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운항총량 자체를 줄여야 할 필요성도 대두한 것이다. “항공편수가 줄면 항공안전도 강화되고, 정시 출도착률도 높아진다”는 것이 중국 민항국 측의 설명이다.

이번 조치를 피해간 주요 신규 취항노선은 이스타항공이 지난 7월 12일 개설한 인천~푸둥(상하이) 노선 정도에 불과하다. 인천~다싱(베이징) 노선을 따낸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의 9월 30일 베이징 다싱신공항 개항일 당일 취항도 불발됐다. 제주항공의 한 관계자는 “신규 취항 금지에 다싱신공항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없어 10월 10일 이후에나 취항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 인천~베이징 취항일은 결정이 안 됐다”고 말했다. 티웨이항공의 한 관계자도 “아직 운항신청을 못해 취항일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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