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회의前 공동성명 포기… "민주주의 심각한 위기"

조선일보
입력 2019.08.23 03:29 | 수정 2019.08.23 03:30

1975년 창설이후 44년만에 처음… 작년 G7분란 재연 사전 봉쇄 차원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로 갈등 커져… "자유진영 세계질서 붕괴 수준"

24~26일 세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다른 회원국과의 갈등 때문에 아예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기로 사전 결정됐다. 공동성명이 무산된 것은 미국이 1975년 이 회의를 주도해 창설한 지 44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회의에서 정상들 간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도널드 트럼프(72) 미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거부해 '균열'이 시작됐다면, 이제 서방 자유 진영 중심의 세계 질서가 '붕괴' 수순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G7 회의 개최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41)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같은 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막고 강대국 간 이견 노출을 완화하기 위해,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관례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솔직히 요즘 공동성명 같은 것을 누가 읽느냐"고도 했다. '어차피 대의명분에 합의도 힘들고, 싸워가며 억지로 성명 내느니 그냥 안 하겠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6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찍힌 이 사진은 미국이 촉발한 자유민주 진영의 분열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탁자를 짚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찍힌 이 사진은 미국이 촉발한 자유민주 진영의 분열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탁자를 짚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독일 총리실

'지난해 갈등'은 작년 6월 캐나다에서 난장판이 됐던 G7 회의를 가리킨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을 상대로 고율 철강 관세를 부과하겠다거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안보 동맹도 깨버릴 수 있다고 위협했다. 나머지 6개국은 '관세 장벽과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자유 진영으로선 원론적 수준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트럼프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이유로 먼저 떠나며 "성명을 승인 않는다"는 트위터를 날렸다. 잔칫상에 재를 뿌린 데 분노한 쥐스탱 트뤼도(47) 캐나다 총리는 "동맹을 모욕한 데 보복하겠다"고 했고, 유럽의 대표 격인 앙겔라 메르켈(65) 독일 총리는 "(트럼프 트윗에) 정신이 번쩍 들고 실망스러웠다"며 우울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견에서 "(공동성명 포기가) 미국과 이견 때문인 건 맞는다. 우리가 파리기후협약 협정 초안을 내봤자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 안 할 테니"라고 했다. 2년 넘게 트럼프를 겪어본 마크롱은 "트럼프가 국내 공약을 밀어붙일 땐 아무도 못 말린다"면서 파리협약이나 이란 핵합의 파기, 무역 전쟁 등을 되돌릴 방도가 없다고 실토했다. 그는 이런 현실에 대해 "곳곳에서 전제정권을 향한 열광이 퍼지면서 민주주의가 패배하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자본주의의 위기이자 불평등의 위기"라고 했다.

각국 언론은 마크롱의 '파격적 결단'에 일리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보리스 존슨(55) 영국 총리가 트럼프에 가세할 경우 '6대1'이 아니라 '5대2' 싸움이 될 수도 있다"면서 "작년보다 더 합의점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자유 진영에서 건재한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권을 잡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를 'G7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아예 갈등 요소를 빼는 '트럼프 봉쇄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온갖 갈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나토 분담금 증액 ▲미·중 무역 전쟁 확전 자제 ▲이란 핵협정 유지 ▲구글·아마존 등 미 IT 대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도입 등 다양한 문제로 갈등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G7 회의에서 이 사안들만큼은 트럼프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했다.

이번 G7에선 유럽국들이 트럼프가 요구해온 러시아의 'G8' 복귀와 제재 완화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 '빅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CNN은 지난 21일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 "마크롱이 최근 트럼프와 통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내년에 초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 반도 강제 합병 이후 G8에서 퇴출당해 유럽의 경제 제재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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