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논문 국가 망신

조선일보
입력 2019.08.23 03:16

명예 저자, 유령 저자, 교환 저자, 도용 저자라는 말이 있다. 모두 저자 자격이 없는 가짜 저자를 일컫는 용어다. '명예 저자'는 논문 작성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에게 선물한다'는 식으로 이름을 끼워넣어 준다고 해서 '선물(gift) 저자'로도 불린다. '유령 저자'는 실제 연구에 기여한 연구자는 빠지고 다른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 '도용 저자'는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특정인 이름을 일방적으로 기입하는 경우다.

▶두 연구자가 합의해 각자 논문에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이름을 서로 넣어주는 게 '교환 저자'다. 가장 고약한 축에 속한다. 동료 교수의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저자로 올려주는 '품앗이 등재'도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교육부 조사로 그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전국 73개 대학 500편 넘는 논문에서 수백 명 교수들이 자신과 친·인척, 지인의 미성년 자녀를 공동 저자로 올린 것이다. 상당수가 대학 입시에 유리한 스펙 쌓기용이었다. 교수가 지식인이 아니라 사기꾼, 파렴치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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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국 교수의 딸 조모(28)씨는 고1 때 2주 인턴을 한 뒤 대한병리학회지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됐다. 제1저자 등재 논문이 있느냐 여부에 따라 취업, 승진, 교수 임용이 갈린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밤새워 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다. 그런데 고1에게 1저자 자격을 준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황당한 이유를 댔다. "(고교생이던 조씨가) 외국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 해줬다"는 것이다. 외국 대학에는 논문 사기를 쳐도 된다는 말인가. 이 사실이 외국에 알려지면 한국 학생들을 어떻게 보겠나. 기막힌 일이다.

▶한국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으로 한동안 국제 학계에서 경계 대상이었다. 유수 학술지들은 한국 저자가 쓴 논문이 접수되면 유독 더 까다롭게 심사하고, 국제 학회에 참석한 한국 학자들은 괜히 움츠러들어야 했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또 한 번 국제 망신을 살 판이다. 국내 의료 분야 최고 학술기구인 대한의학회도 22일 "대한민국 연구 윤리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와 국격(國格) 추락이 심히 걱정된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연히 제1저자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따님"이라고 했다. "대학교수 지도 아래 현장 실습을 했고 그 경험을 '에세이'로 써서 보고서를 제출"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의학 논문을 고교생 에세이로 치부한 것이다. 정치에 미치면 눈에 콩깍지가 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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