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道者의 삶을 담은… 멕시코와 부산의 하얀 집

조선일보
입력 2019.08.22 04:06 | 수정 2019.08.22 14:03

건축가 우대성… '송도의 聖者'로 불린 소재건 신부
가난한 아이들에 바친 생애 담아 멕시코 마지막 거처에 기념관 건립

건축은 생각과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오퍼스 건축(대표 건축가 우대성·조성기·김형종)의 두 근작은 쉽게 헐고 쉽게 짓는 풍조 속에 잊히기 쉬운 이 명제를 일깨운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었던 소 알로이시오(한국명 소재건·1930~1992) 신부를 기리는 멕시코의 '비야 알로이시오'(2018)와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원'(2016)이다. 지난 13일 만난 건축가 우대성(50)은 "멕시코에선 신부님의 아우라가 잘 드러나게 하는 것, 광안리에선 수녀원에 쌓인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멕시코 찰코 ‘비야 알로이시오’에 세워진 성당. 흰색 벽토로 외관을 마감해 수수한 느낌을 준다. ‘비야 알로이시오’ 건축 과정을 담은 책이 지난달 나왔다. /César Béjar

◇건축, 정신의 매개체

미국 출신인 소 신부는 1957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자원해서 한국에 왔다. 부산 송도성당 주임을 지내며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송도의 성자(聖者)'로 불렸다. 송도 성당에 다녔던 고(故)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이다. 비야 알로이시오가 들어선 멕시코 찰코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소 신부가 1990년부터 선종(善終) 직전까지 병마와 싸우며 교육사업을 이어간 곳이다. 소 신부가 1964년 부산에서 창설한 마리아 수녀회가 무료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비야 알로이시오 성당 내부. 푸른색 계열의 색유리로 차분한 느낌의 푸른빛을 들였다. 푸른빛은 성당에 잘 쓰이지 않지만 새벽빛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비야 알로이시오 성당 내부. 푸른색 계열의 색유리로 차분한 느낌의 푸른빛을 들였다. 푸른빛은 성당에 잘 쓰이지 않지만 새벽빛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César Béjar
소 신부의 선종 후 수녀회는 그를 기리는 공간을 학교 부지에 짓기로 했다. 옛날 옥수수 농장이었던 33만㎡(10만평)의 땅이었다. 부산의 양육시설 '수국마을' 등 수녀회 건축물을 맡았던 우대성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대성은 "신부님 거처였던 농장 저택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며 "그의 정신이 서린 이 건물을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1934년 지어진 농장 저택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살려 성당, 게스트하우스, 수녀원, 카페·식당 등 새로 지은 건물에 사용했다. 예컨대 새 건물 외장재는 저택처럼 붉은 벽돌과 흰 스터코(벽토)로 했다. 현지에서 흔하고 보수도 쉬운 재료다. 성당의 검박하고 흰 벽은 도화지를 닮았다. "건물이 형태로 인식되기보다 이곳 사람들의 행위를 담는 배경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저택의 크고 둥근 아치, 작은 네모가 촘촘한 색유리, 빗물 홈통의 디자인도 차용했다.

저택은 기념관이 됐다. 소 신부의 붉은 제의 앞에서 방문객들이 기도하도록 했다. "고통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 안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신부의 생전 묵상을 접하고 흐느끼는 이들도 있다. 각자 느낌을 적어 벽에 붙이도록 메모지를 곁에 뒀다. 한 달 만에 벽이 메모지로 가득 찼다.

◇건축, 기억의 저장고

베네딕도 수녀원은 1965년에 지은 건물을 고치는 작업이었다. 이곳이 수녀들의 집이자 고향이라는 점에 집중했다. "수녀님들은 외부에서 활동하다가도 1년에 한 번씩 이곳 본원으로 피정을 옵니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다른 집이 돼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과제이자 해법이었습니다."

중정이 보이는 베네딕도 수녀원 복도.
중정이 보이는 베네딕도 수녀원 복도. /건축사진가 윤준환
50년이 넘은 수녀원은 춥고, 비가 새고, 세월이 지나면서 공간이 부족해지거나 쓰임새가 달라진 곳도 있었다. 하나하나 손보면서 달라진 티를 내지 않았다. 성당의 녹색 세로창. 따뜻한 복층 유리로 바꾸고 녹색 색유리를 덧대면서, 실물 크기 모형으로 실험해가며 원래 느낌을 찾아냈다. 문을 새로 낼 때는 기존 문의 손잡이나 판재를 되도록 재활용했다. 건축 과정을 기록한 책이 나왔을 때 이해인 수녀가 쓴 축사에 새집을 바라보는 수녀들 마음이 묻어난다. "광안리 하얀 집에 하얀 마음으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수도자로서 나는 이 집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옛집의 모습을 되도록 살리면서 새 옷을 입히느라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을 건축가의 이 책을 대하니 왈칵 눈물이 나는 행복!"

녹색 세로 유리창 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한 부산 베네딕도 수녀원 성당 내부.
녹색 세로 유리창 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한 부산 베네딕도 수녀원 성당 내부. /건축사진가 윤준환

종교시설이지만 건축가는 사회적 의미도 발견했다. 우대성은 "노령화 사회 공동 주거의 해법이 수도원에 있다"고 했다. "적정한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는 개인 생활과 공동 생활이 같이 이뤄집니다. 협동조합주택과도 비슷한데 그보다 규모가 더 크고 적극적인 형태죠.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을 조금 느슨하게 한다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