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533] 소구적신 (消舊積新)

조선일보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8.22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칠극(七克)'은 예수회 신부 판토하(Didace De Pantoja·1571~1618)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한문으로 천주교 교리를 쉽게 설명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이 책을 통해 천주교인이 되었다. 서문에서 말했다. "대저 마음의 병이 일곱 가지요,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일곱 가지다. 핵심은 모두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는 것(消舊積新)에 불과하다." 이어 그는 교만함(傲)은 겸손으로 이기고, 질투(妬)는 어짊과 사랑으로 극복하며, 탐욕(貪)은 베풂으로 풀고, 분노(忿)는 인내로 가라앉힌다. 욕심(饕)은 절제로 막으며, 음란함(淫)은 정결로 차단하고, 게으름(怠)은 부지런함으로 넘어서야 한다며, 7장으로 나눠 그 방법을 구체화했다.

제1장은 교만을 누르는 방법이다. 그중 몇 단락. "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고 고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 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如色慾少則饜, 老則息. 如忿怒, 忍則去, 靜則却. 惟傲一納於心, 時處附着焉. 身能老而傲不衰)."

"때가 되지 않았는데 드러나 칭찬을 받는 것은 길가의 과일과 같다. 사람마다 따지만 익었는지를 묻진 않는다. 수많은 열매 중에 끝내 익는 열매는 하나도 없다(非時而露, 使人見稱, 路旁果也. 人人取之, 安問者熟? 百千萬果, 竟無一成)."

서양의 여러 현자의 일화를 적고, '논어' 같은 유가 경전도 인용하다가 성경 말씀 한 단락을 슬쩍 끼워 넣는다. "쇠를 시험하려면 붉게 달궈진 화로에 넣고, 사람을 시험하려면 칭찬하는 말 속에 넣는다. 가짜 쇠는 불에 들어가면 연기를 따라 흩어지지만, 진짜 쇠는 불에 들어가면 단련할수록 정금(精金)이 된다(經曰: 試金, 納之紅爐. 試人, 納諸譽口. 僞金入火, 隨烟而散. 眞金入火, 彌煉彌精)." 이 말은 성경 '잠언' 27장 21절의 '도가니에서 금이나 은을 제련하듯, 칭찬해 보아야 사람됨을 안다'고 한 말을 한문투로 풀어 썼다. 예화가 신선하고 설명이 알기 쉬워 심신 수양서로 알고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어느새 신앙이 싹터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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