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예술가와 '쟁이'

입력 2019.08.21 03:02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2008년은 '남도 화단의 실질적 개창자'라 불리는 소치 허련(1808~1893) 탄생 200주년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조선 말기 화단을 빛낸 허련의 예술 세계를 기리기 위해 국립광주박물관, 서울 예술의전당, 진도 운림산방 등에서 연이어 학술대회와 전시회를 개최했다. 진도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허련은 한평생 양반 또는 문인 지향의 삶을 살았고 일생 동안 문인화풍의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간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양반이나 문인이라기보다는 문인적 삶을 지향한 직업화가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해 가을 진도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허련의 생애와 예술 활동에 대해 발표한 필자에게 매서운 질타가 쏟아졌다. "대학자 허련을 일개 화가로 격하시켰다" "헌종 임금의 총애를 얻고 '소치실록' 등 숱한 기록을 남겼으니 당연히 학자가 아닌가"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분들의 주장에는 허련을 높이고 싶은 심정과 함께 학자는 양반이니 고귀하고 화가는 쟁이, 곧 기술자 정도에 불과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이렇게 당황한 적은 처음이었지만 이후 이런 종류의 경험을 다른 여러 곳에서도 겪고 보니 이젠 추억이 되었다. 그날 저녁 당혹감 속에 마셔댄 진도 명물 홍주 탓에 이튿날에는 심한 숙취로 헤맸다. 깨질 듯한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은 양반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확고하게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한 의문이었다.

[일사일언] 예술가와 '쟁이'
우리에게는 예술가를 '쟁이'라 무시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신비화로 예술가를 지극히 높은 존재로 격상시켜보는 모순적 의식구조가 공존한다. 무시나 과장 모두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예술가가 최고의 정점에 있는 모습으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범죄자는 그가 저지른 가장 극악한 범죄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예술가는 그가 이룩한 가장 높은 예술적 성취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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