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北 '씨앗 공작'

조선일보
입력 2019.08.21 03:16

콤프로마트(kompromat)란 러시아 말이 있다. 몰카나 도청 장치 등을 이용해 유명 인사들의 약점을 잡은 뒤 협박하는 공작을 뜻한다. 소련 시절 크렘린 궁에서 가까운 한 호텔은 벨보이·요리사·청소부까지 죄다 KGB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이런 데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소련 간첩 노릇을 하게 된 외국 정치인·기업인이 한둘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3년 모스크바 호텔에서 여성들과 낯뜨거운 짓을 하다가 몰카에 찍혔다는 소문으로 지난 대선 때 곤욕을 치렀다.

▶대만 법무부는 2009년 중국을 방문하려는 관료들에게 '미인계' 경고령을 내렸다. 당시 중국·대만 해빙 분위기를 타고 중국으로 몰려간 대만 공무원 가운데 술과 여자에 빠져 기밀을 흘리거나 간첩으로 포섭되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대만 국회의원 보좌관은 중국 현지처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총통부 도면 등을 중국 측에 넘겼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만물상] 北 '씨앗 공작'
▶이런 공작은 북한이 중·러 뺨친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2014년 엘리트 탈북민을 인용해 "북이 '씨앗 품기 작전(seed-bearing program)'을 쓴다"고 했다. 방북한 외국 인사들에게 매력적인 여성을 통역이나 안내 요원으로 붙여 동침하게 하고는 몇 달 뒤 "당신 아이를 가졌다"고 통보한다는 것이다. 술을 진탕 먹여 말실수 등을 유도하는 수법도 동원된다. 한번 걸려들면 꼼짝없이 친북(親北) 인사가 된다고 한다. 북이 무슨 짓을 해도 손뼉을 치고, 경협이나 대북 지원을 추진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북 공작에 모든 사람이 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 종교인은 숙소에 여성이 들어오자 그 사진을 찍고는 '북 당국이 보내서 왔다'는 진술을 몰래 녹음한 뒤 북측에 항의했다고 한다. 북이 건네는 술을 마시고 곧바로 화장실에서 토해내는 방법으로 정신을 유지했다는 사람도 있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방북 인사들에게 반드시 여자·술·말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준다"고 했다.

▶그제 북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주역인 박지원 의원을 향해 "덜 돼먹은 추물" "노죽(노골적 아부) 부리던 연극쟁이"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배은망덕"이라고도 했다. 최근 북 미사일 도발을 비판했던 박 의원은 인신 모독을 당하고도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웃어넘긴다"고 했다. 노련한 그가 북의 '콤프로마트'에 걸려들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북 도발을 웃어넘기지 말고 바른말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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