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마국수·속도전가루… 지금의 북한음식 먹어봤나요?

입력 2019.08.17 03:00 | 수정 2019.08.17 07:28

[아무튼, 주말]
북한음식점의 메카, 인천 남동구 일대

'북청형제원조국수'와 '둥이네통일가게'에서 파는 북한 음식과 떡, 과자로 한상 푸짐하게 차렸다. 북한에서는 밥과 떡, 과자를 따로 먹지 않고 함께 즐긴다. ①두부밥 ②농마국수 ③속도전가루로 만든 떡 ④쉼떡 ⑤야채송편 ⑥손가락과자 ⑦꼬리떡 ⑧북한식 순대 ⑨농마비빔국수
'북청형제원조국수'와 '둥이네통일가게'에서 파는 북한 음식과 떡, 과자로 한상 푸짐하게 차렸다. 북한에서는 밥과 떡, 과자를 따로 먹지 않고 함께 즐긴다. ①두부밥 ②농마국수 ③속도전가루로 만든 떡 ④쉼떡 ⑤야채송편 ⑥손가락과자 ⑦꼬리떡 ⑧북한식 순대 ⑨농마비빔국수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남북 정상회담의 예상 못 한 최고 수혜자는 평양냉면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대접한 냉면을 맛보겠다며 몰려든 인파로 특수를 누렸다. 서울의 유명 냉면집과 이북 음식점은 수십 년 전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대부분 과거 기억대로 만드는 음식. 어쩌면 지금의 북한 음식과는 다르지 않을까. 현재 북한 주민이 먹는 음식은 무엇이며 어떤 맛일까.

인천, 북한음식의 메카

이 궁금증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천으로 가는 것이다. 인천에는 탈북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북한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국화네’가 2011년 문 연 이후 길 건너편 상가에 ‘북한왕찹쌀순대집’이, 바로 옆 아파트단지 상가에 ‘호월일가’가 성업 중이다. 남동구와 맞붙은 연수구 선학동에는 지난 2013년 북한식 과자·떡 전문점 ‘둥이네통일가게’에 이어 지난 7월 ‘북청형제원조국수집’이 문 열었다.

북한음식점 밀집지역 위치도
인천 남동구와 연수구에 북한 식당이 늘어나는 이유는 탈북자가 이곳에 많이 정착했기 때문이다. 북한 음식을 찾는 수요가 생겨나자 공급이 뒤따랐단 거다. 통일부 관계자는 “인천 남동구는 탈북자가 가장 많이 사는 기초자치단체로, 2019년 7월말 기준 2000여 명의 탈북자가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인천 남동구에 정착하기 시작한 건 2006년 아파트촌이 조성되면서부터. 통일원 산하 하나원이 탈북자의 정착 지원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배정했고, 탈북자들도 수도권 배정을 선호하다 보니 이 지역에 밀집하게 됐다. 인근에 인천남동공단이 있어서 일자리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도 탈북자들이 남동구 주변을 선호하는 이유가 됐다.

북한음식, 의외로 화끈하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맛본 ‘진짜’ 북한음식은 의외로 맵고 자극적이었다. 농마국수가 대표적이다. 농마국수는 감자전분(농마)으로 뽑은 면발을 육수에 말아 먹는 국수요리. 농마국수는 함경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북청형제원조국수집 홍광철씨는 “북한 살 때 함흥냉면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농마국수와 함흥냉면의 가장 큰 차이는 면발. 함경도 실향민들은 남한에선 감자전분보다 저렴한 고구마전분을 사용해 국수를 뽑아 함흥냉면을 만들었다. 농마국수는 뽀얗고 투명하며 더 질긴 반면, 함흥냉면 면발은 상대적으로 탁하고 노르스름한 빛깔에 덜 질기다.

농마국수는 새콤달콤했다. ‘북한 음식은 심심하다’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고춧가루·소금·대파·양파 등을 볶아서 만든 다진양념(다대기)이 얹혀 나왔다. 국수를 헤집으니 다진 양념이 풀어지며 닭뼈와 소뼈를 끓여 뽑는다는 국물이 새빨갛고 매콤한 맛으로 변했다. 홍광철씨는 “원래는 더 달고 맵고 새콤하다”며 “북한에서는 농마국수에 고춧가루 무쳐서 볶은 고사리와 콩나물도 얹어 먹는데, 이곳(남한) 사람들이 안 좋아해 빼고 낸다”고 했다. 고사리와 콩나물도 달라고 해서 농마국수에 넣으니 육개장과 비슷했다. 새콤달콤하면서 차가운 육개장 국물과 함께 들이키는 가늘고 질긴 국수는 낯선 맛이었다.

농마국수와 함께 거의 모든 북한 식당에서 파는 메뉴로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이 있다. 두부밥은 전통 음식이고, 인조고기밥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허기를 때우기 위해 개발된 음식이라고 한다. 국화네 허철근씨는 “북한 전역에서 즐겨 먹는 간식으로, 길거리에서도 쉽게 사먹을 수 있다”고 했다.

두부밥은 납작한 삼각형 모양으로 도톰하게 자른 두부를 튀겨서 겉을 단단하게 만든 다음 칼집을 넣고 쌀밥을 채운다. 고춧가루와 대파, 양파, 소금, 북한에서 ‘맛내기’라 부르는 인공조미료(MSG) 등으로 만든 매운 양념을 바르거나 곁들여 내서 찍어 먹는다. 인조고기밥은 두부밥과 비슷하지만 두부 대신 인조고기를 사용한다. 인조고기는 콩에서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가공해 만든다.

두부밥과 인조고기밥 둘 다 심심하고 밋밋하다. 눈과 혀를 즐겁게 하기보단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란 인상이다. 호월일가에서 만난 여성 탈북자는 “두부밥이나 인조고기밥은 양념 맛으로 먹는 것이지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고 했다.

선지와 찹쌀, 멥쌀, 토장(막장), 고추씨, 배추 우거지, 다진 대파·양파·마늘 등이 들어가는 북한식 순대는 전통 순대와 거의 같은 맛이지만 독특한 냄새가 났다. ‘내기’ 또는 ‘내기풀’이라고 부르는 향신료를 넣기 때문이다. 홍광철씨는 “내기는 참깨처럼 생긴 풀”이라며 “향이 좋아서 북한에서는 순대에 내기의 잎이나 씨를 갈아 넣고, 줄기로는 김치도 담근다”고 했다. 중동음식을 연상케 하는 내기의 향은 이남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고난의 행군으로 탄생한 ‘속도전가루’

인천의 북한음식점에서는 밥과 떡·과자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호월일가에서 농마국수를 주문하자 떡을 내줬다. 국화네 허철근씨는 “북한의 식당에서는 음식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떡을 내주기도 하고, 밥과 떡을 같이 먹기도 한다”고 했다. “비빔농마국수 먹고 남은 양념에 떡을 찍어 먹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북한 떡은 맛이나 포만감에서 간식보단 식사용 음식 같았다. 둥이네통일가게에서 맛본 ‘야채송편’은 남자 어른 주먹 만하다. 과거 음력 2월 초하룻날 지주들이 “올 한 해 농사 잘해달라”는 의미로 노비와 머슴에게 나눠주던 ‘노비송편’과 비슷하다. 속은 잘게 썬 김치와 배추를 넣는다. 송편과 만두를 합친 듯하달까, 아니면 피가 두꺼운 만두 같은 맛이다.

북한 전역에서 즐긴다는 ‘손가락과자’도 큼직하다. 손가락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성인 남성 손가락보다 훨씬 굵다. 밀가루에 우유, 소금, 설탕, 달걀, 옥수수 전분을 섞고 발효시켜 구워낸 다음 녹인 설탕물을 바른다. 건빵과 카스텔라를 합친 듯한 씹는 맛에 너무 달지 않아 남한 사람들에게도 인기 높다. 커피와 썩 어울린다. 둥이네 주인 홍은혜씨는 “남한 사람들이 ‘추억에 없는 추억의 맛’이라며 희한해한다”고 했다.

둥이네통일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은 ‘속도전가루’이다. 가루를 찬물로 반죽하면 신기하게도 바로 먹을 수 있는 떡이 된다. 빨리 먹을 수 있다 하여 속도전가루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남한에서는 ‘즉석 인절미 믹스’로 홍씨가 특허를 획득했다.

상자를 뜯으면 누르스름한 가루가 비닐 봉지에 담겨 있다. 구워서 곱게 빻은 옥수수와 안락미를 콩가루, 설탕 등과 섞은 가루다. 찬물·참기름을 붓고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니 금세 떡이 만들어졌다. 인절미와 비슷하지만 식감이 살짝 거칠면서 미숫가루 비슷한 맛이다.

홍씨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북한 정부와 민간에서 음식 연구를 많이 하면서 탄생한 게 인조고기와 속도전가루”라며 “전국 관공서와 학교에서 열리는 북한 체험 행사에서 인기가 높다”고 했다.

“남한사람 입에 안 맞아도 고향 맛 지킬 것”

인천 남동구 북한 식당은 대부분 함경도와 양강도 출신들이 운영한다. 최근 탈북자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가까운데다 나진·선봉 경제특구가 있어서 중국으로 넘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자연 음식에도 함경·양강도의 특색이 녹아있다.

평양에서 3대에 걸쳐 냉면을 만들어 팔던 집안 출신으로 지난 5월 서울 서초동에 평양냉면집 ‘설눈’을 연 문연희 대표는 “평양과 평안도·황해도에서도 냉면에 다대기(다진양념)를 넣는 등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맵게 먹지만 함경도나 양강도처럼 음식이 새빨갛거나 기름이 둥둥 뜨지는 않는다”며 “아무래도 추운 지방이다 보니 매콤하고 얼큰하게 먹지 않나 싶다”고 했다.

국화네 허철근씨는 “정상회담 직후 남한 사람들이 잠시 몰렸지만, 전체 손님의 80%가 북한 사람들”이라며 “남한 사람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리지만 ‘오리지널’ 맛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인천 소재 북한음식점

북청형제원조국수집: 농마국수+만두 7000원, 농마비빔국수+만두 8000원, 명태찜 8000원, 찹쌀순대 6000원, 두부밥 5000원. 인천 연수구 학나래로 5번길 46.

호월일가: 인조고기밥·두부밥 1만원, 농마국수 6000원, 옥수수국수 5000원, 명태회냉면 7000원, 농마떡국 7000원. 인천 남동구 논현동 635-1.

국화네: 콩고기밥·두부밥 1만원, 순대 5000원, 언감자떡 1만5000원(1㎏), 냉면·비빔냉면(농마국수) 5000원. 인천 남동구 논현동 600-1.

북한왕찹쌀순대집: 인천 남동구 논현동 599-1.

둥이네통일가게: 즉석인절미믹스(속도전가루) 5000원(217g), 손가락과자 3000원, 북한식 야채송편·쉼떡(증편)·김치쌀만두 1만5000원(1㎏). 인천 연수구 학나래로 5번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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