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르 파티'라 부르지 마오… 10대 탈모 청소년들이 울고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8.17 03:00

[아무튼, 주말]
10대 중 환자 비율 매년 늘어
탈모 고민 커진 청소년들

"야, 탈모맨!"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중학생 장모(15)군이 평소 불리는 별명이다. 장군은 타고난 머리숱이 없는 데다 정수리 부근에 '원형 탈모'가 자리 잡았다. 수업 시간 중 머리카락이 없는 노인 그림이 나오면 반 학생들은 '탈모맨이다!'라며 비웃는다. 탈모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장군을 찾는다. 장군은 "화내면 속 좁아 보일까 봐 웃고 넘기지만, 집에 오면 머리부터 확인하고 말릴 때 빠지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다. 지금은 친구들 몰래 어머니와 탈모 전문 병원에 다니는 중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고등학생은 교내에 자조적 의미를 담은 '탈모충(蟲)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각 학급에서 탈모라고 놀림받는 학생 4명이 매주 목요일 모여 팁을 나누고 서로 위로한다. 학교에는 수학 스터디라고 했지만, 서로 쓰는 탈모 약의 효능을 비교하고 경과를 공유한다. 이 모임을 만들었다는 고등학생은 "학급 친구들은 탈모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꺼려 고맙지만 불편하다"며 "비슷한 처지끼리 모이니 스스럼없이 서로 대할 수 있다"고 했다.

중·고등학생은 할인해주는 탈모 전문 클리닉이 늘고 있다(왼쪽 사진). 수능이 끝나면 수험생 할인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10대 학생 중 탈모 환자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인터넷 캡처
중·고등학생은 할인해주는 탈모 전문 클리닉이 늘고 있다(왼쪽 사진). 수능이 끝나면 수험생 할인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10대 학생 중 탈모 환자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인터넷 캡처
탈모가 청년을 넘어 10대까지 마수(魔手)를 뻗쳤다. 고3 수험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겪는다는 일시적인 탈모가 아니다. 성인과 다를 것 없이 'M자형 탈모' '원형 탈모'가 신경 쓰여 대인 관계에 불편함을 겪는다. 피부과에 찾아가 약을 처방받고 탈모 전문 미용실에 찾아가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는 시술을 받는다. 일선 교사들은 "한 학급에 한 명 정도는 탈모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며 흔한 경우라고 했다. 유박린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가 생긴다 하면 특별한 학생이라고 하던 예전과 달리, 성인 남성 못지않게 10대가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10대 탈모 환자의 증가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10대 청소년 중 탈모 환자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4년간 10대 탈모 환자는 약 1만7000명으로 일정하다. 전체 탈모 인구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10대 인구는 해마다 17만~27만명씩 줄고 있다. 인구 대비 환자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전남 목포에서 근무하는 석재원(31) 교사는 "병원을 찾지 않고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도 10대 환자들이 많아졌다. 탈모 치료로 몇 년간 피부과를 다닌 직장인 황모(41)씨는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보면 내가 제일 연장자"라며 "중장년층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고가의 탈모 전문 미용실도 찾는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의 탈모 전문 미용실을 찾은 10대 학생은 "학교 허락을 받고 머리숱이 많아 보이는 파마를 하러 찾아왔다"고 했다. 이 미용실들은 머리를 자르는 데에만 약 10만원을 받고, 파마는 일반 시술보다 2~3배가량 비싸다. 미용실 관계자는 "직장인들이 주로 많지만, 같이 시술받는 10대 학생들도 종종 있다"고 했다.

탈모에 관심이 많아진 사회 분위기가 10대 탈모 환자 증가에 한몫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송모(47)씨는 지난달 아들(14)과 서울 강남의 유명 탈모 클리닉에 다녀왔다. 아들이 몇 주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며 가자고 보챘기 때문이다. 약을 쓸 단계까지는 아니니 상태를 더 지켜보자는 게 진단 결과. 송씨는 "TV나 인터넷에서 탈모 비하 유머가 많아지니,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놀림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자녀가 머리카락 없는 사람만 보면 '머머리(대머리라는 뜻의 신조어)'라며 좋아한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탈모 환자는 놀려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10대 초반인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엄모(26)씨는 지난 학기에 '탈모르 파티'라는 단어를 교실에서 쓰지 못하게 했다. 유행곡 '아모르 파티'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를 머리숱이 없는 같은 반 학생들을 향해 말했기 때문이다. 엄 교사는 "초등학생들이 유행에 가장 빨리 반응한다"며 "아마 유튜브 등에서 들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 같다"고 했다. 학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일부는 방학을 이용해 병원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설마'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 병원을 방문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다. 치료 시기를 이미 놓치고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많은데, 10대 탈모도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시기이기 때문에 지루성 피부염으로 탈모가 생길 확률이 더 높다는 분석도 있다. 학업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습관도 10대 탈모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유박린 교수는 "원형 탈모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는 10대 때 가장 잘 나타나기도 한다"며 "미성숙한 신체에 내복약은 부담될 수 있으니, 피부 연고 등으로 증상을 완화한 뒤 성인이 되고 난 다음 수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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