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때 바지' 입는 北 여성들 北선 세계 흐름과 제일 비슷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8.17 03:00 | 수정 2019.08.19 16:58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김정은의 정상 외교에 부인 리설주가 동행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그 패션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김일성 때는 부인 김성애가 공식 석상에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언제나 전통 한복 차림이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가 김성애의 옷차림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김정일 시대엔 영부인이 누군지도 몰랐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가끔 오빠와 동행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늘 소박한 점퍼 차림에 평범한 파마머리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2012년 김정은이 평양릉라인민유원지 개통식에 젊은 부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은 대단한 파격이었다.

처음 리설주가 북한 사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비교적 소박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미니스커트, 하이힐 등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김일성 배지 대신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나타난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해외 언론들은 리설주의 패션을 따라가면서 크리스티앙 디오르, 프라다, 발렌티노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입고 나왔다고 관심을 보였지만, 세계 패션 흐름과 단절된 북한 사람치고 리설주의 의상이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항간에는 프랑스에서 전문 재단사가 평양에 들어와 리설주 옷을 맞추어 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패션 감각으로 보면 어릴 때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김여정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리설주보다 앞설 텐데 김여정은 별로 의상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색도 어두운 무채색 계열을 주로 입는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옷과 컬러를 선택하는 리설주를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저렇게 패션 감각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옆에 있으니 김정은도 세계적 추세에 맞게 북한을 개방할 것이라고 좋게 보기까지 했다.

리설주 패션은 북한 상류층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패션이 바뀔 때마다 경제 능력이 있는 상류층 젊은 여성들은 외화 상점이나 장마당에서 리설주가 입었던 옷 스타일과 비슷한 옷을 찾는다. 리설주가 들었던 명품 핸드백과 비슷한 '짝퉁' 핸드백을 든 여성들도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날 북한 여성의 패션 변화를 이끈 것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다. 2000년대 중반 드라마 '가을동화'가 북한에서 인기 끌면서 여주인공 송혜교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원래 북한 여자들은 앞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거나 핀으로 고정하는데 앞머리를 흘려 내리는 스타일이 유행하자 규찰대에선 '거지 머리'라면서 단속했다. 드라마를 보고 배낭을 엉덩이까지 길게 내려오게 멘 스타일이 퍼지기도 했다.

평양 거리 곳곳에는 국영 양복점도 많고 개인이 집에서 몰래 운영하는 양복점도 많다. 돈만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다. 양복점에 가면 일본, 중국, 유럽의 패션 잡지들을 가져다 놓고 고객이 자기에게 맞는 디자인을 선택하도록 한다.

남북의 언어 차이는 패션에도 드러난다. 북한에선 미니스커트는 짧은 치마, 원피스는 달린 옷, 하이힐은 뒤축 높은 구두, 스키니진은 뺑때 바지, 청바지는 진 바지, 스타킹은 긴 양말, 후드 티는 모자 달린 웃옷 등으로 부른다. 서울패션위크가 있듯이 평양에서도 봄과 가을에 평양의 패션 위크 격인 '옷 품평회'가 열린다.

최근 평양 거리에서는 단조로운 색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난 평창올림픽 때 온 북한 예술단은 검정 퍼로 장식된 소매의 빨간 코트, 검정 퍼 목도리와 퍼 모자 등을 착용했다. 아마 그들이 입었던 옷들도 대부분 평양 국영 옷 공장들에서 각자의 사이즈에 맞게 지어 입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북한에서 제일 빨리 변하는 게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세계적인 추세를 그나마 가장 따르는 분야 아닐까 싶다. 패션 변화만큼이나 북한 사회 전반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변화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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