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인 서울 강북의 한 고교는 지난해 전교생 500여명 중 16명이 학교를 그만둬 학업중단율이 3.2%에 달한다. 전국 평균(1.6%)의 2배나 된다. 대학진학률(39%)도 전국 평균(55%)보다 크게 떨어진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으로는 수능은 고사하고 학교 시험 준비도 힘겨워한다"면서 "대학 보내려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육과정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혁신학교는 좌파 교육감들이 2009년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토론·참여식 수업이 강점이지만 교과 수업을 등한시해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로 지정된다"는 말이 나오면 반발하고, 집회와 시위를 열어 반대한다. 올 초 서울 초등학교 3곳이 학부모 반발로 혁신학교 공모 신청을 철회했을 정도다. 최근까지 이 학교에 근무했던 박모 교사는 "공부 좀 하는 중3 애들이 배정받으면 펑펑 우는 학교"라며 "그 학교 근무하면서 열의 있는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떠날 때마다 교사로서 미안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학교는 최근 4년마다 실시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종합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다. 현재 혁신학교로 운영 중인 서울 지역 초·중·고는 213곳으로, 4년마다 종합 평가를 받는다. 올해는 이 학교를 포함해 내년 2월 혁신학교 지정 기간이 끝나는 50곳이 평가를 받았는데 48곳(96%)이 최고 등급인 '매우 우수'와 두 번째 등급인 '우수'를 받았다.

학교 측이 평가위원 선정하는 '셀프 평가'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평가 대상 50곳 중 8곳은 '매우 우수' 등급을, 40곳은 '우수' 등급을 줬다. 2곳은 '보통'을 받았다. 5등급으로 이뤄지는 평가에서 '미흡'이나 '매우 미흡'을 받은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교육계에서는 "올해 자사고 평가에서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가 높은 학교들도 줄줄이 탈락했는데 혁신학교 평가는 어찌 이리 후하냐"는 말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1곳당 연간 5000만~6000만원의 별도 지원금을 주고 있다.

평가 방식과 절차 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1차 평가를 담당하는 '자체평가위원회'는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 가운데 교장이 지명하는 7~9명으로 구성된다. 평가 대상인 학교 측에서 평가위원을 선정하는 것이라 "학교가 '셀프 평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2차 평가는 '교육청 평가단'이 맡는다. 5명 정도의 평가단원들이 각 학교 자체평가서를 5단계로 등급을 매긴다. 서류 평가와 함께 현장 방문 평가도 병행하는데 모든 학교가 아니라 20% 정도만 방문하는 수준이라 세부 검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정해진 등급을 교육청 위원회가 확정하게 된다.

자사고와 혁신학교 평가는 극과 극

혁신학교 평가에서는 단 한 곳도 '미흡하다'는 판정을 내리지 않은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자사고(자율형사립고) 평가에서는 "기준 점수에 미달한다"면서 8곳이나 무더기로 탈락시킨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탈락한 자사고의 한 학부모는 "자사고는 대부분 학생 등록금이나 법인 전입금으로 운영하는데도 턱없이 깐깐하게 평가하더니 정작 세금으로 지원하는 혁신학교 평가는 솜방망이"라고 말했다.

5년마다 시행하는 자사고 운영 성과 평가는 '학교 운영'(30점), '교육과정 운영'(30점), '교원의 전문성'(5점), '재정 및 시설 여건'(15점), '학교 만족도'(8점), '교육청 재량 평가'(12점)로 점수화해서 엄격하게 평가하는 반면 혁신학교는 평가 결과에서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또 '미흡'이나 '매우 미흡' 등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지원금 삭감, 지정 취소 등을 하지도 않는다.

교육청 관계자는 "종합 평가는 혁신학교를 어떻게 더 잘 운영할지 컨설팅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고 봐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