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친정부 응원가' 반대편서 울리는 비상 사이렌

조선일보
입력 2019.08.16 03:15

'비판 유튜브' 손 보려는 정권… 생각보다 빠르게 칼 뽑아
정권 비판하면 가짜 뉴스 몰아… 이 모든 게 비상 사이렌으로 들려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이 어제 실내 방송을 한다. "입주민 여러분,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은 두 번 반복됐다. 순간 내 가슴이 흔들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태극기'도 알겠다. 그런데 갑자기 낯설다. 토요 광화문 집회를 이어온 '태극기 부대', 그 때문에 엄청 껄끄러웠을 문(文) 정부, 양쪽은 서로 극한 대척점이라 봤는데, 이제 곳곳의 민관 집회가 불매(不買)의 태극기를 들라고 나를 동원하려 든다. 뭔가 작년 광복절까진 너무 당연했는데 올해는 아니다. 이쪽저쪽, 그들 사이에서 '나의 태극기'는 길을 잃는다. 나는 번지수를 못 찾고 허둥댄다.

5060 중년 사촌끼리 보는 단톡방이 뜨겁다. 아베를 꾸짖는 글, 태극기를 흔드는 흰 저고리, 검정 치마의 소녀 그림이 올라와 있다. 지금 광복절, 광화문광장과 태평로 여기저기에서 발성된 어지러운 집회의 확성기 음향이 내 창문에 와서 부딪힌다. 단체도 소속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어딘가.

분명한 것은 나는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파트 관리소장님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복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라 사랑과 정권 사랑은 전혀 다르다. 정부 비판은 기자로서 내 존재 이유다. 정권에 장단 맞추는 일은 설령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일처럼 보여도 내 몫은 아니다. 나는 좌든 우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긴장할 뿐이다. 정권은 언론이 열에 한 마디만 쓴소리를 해도 적으로 돌렸다.

정권은 유튜브를 손 볼 모양이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총선 전에 저들이 칼을 뽑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이제 한·일 갈등의 경제적 영향을 비관(悲觀)하면 가짜·허위·과장으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 정권은 '이길 수 있다' '따라잡을 수 있다' 같은 친정부 응원가만 허용할 태세다.

'가짜 뉴스'를 정권이 규정하면 매우 위험한 폭탄이다. 저들은 '시장(市場)의 불안감'을 얘기했는데,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이 오히려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IMF 사태' 때도 펀더멘털이 든든하다고, 신용 등급이 좋다 했지만 결국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경제 예견은 그만큼 조심스럽다. 지금 정권의 잣대로 보면 루비니 교수 같은 이성적 비관주의는 이제부터 가짜 뉴스다. "평화 경제가 답이다", 이런 의도된 국민 동원 여론에 찬성하지 않으면 매국이나 가짜로 낙인찍힐 것이다.

정권은 반일로 나라 전체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게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외국으로 도피하라는 사이렌으로 알아들은 사람도 있고, 현금 자산을 움켜쥐고 금융 방공호로 숨으라는 사이렌으로 들은 사람도 있고, 피켓을 들고 광장에 운집하라는 사이렌으로 알아들은 사람도 있다.

외면하지 말자. 정권 지지자도 반대자도 다 같이 '한국인'인 이유는 헌법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자유민주'와 '공화'다. '애국적 의무감', 그건 두 번째다. 과거 아일랜드는 영국인이 보기에 게으르고 술독에 빠져 있는 구제 불능 '하얀 깜둥이'였다. 이제 아일랜드는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영국을 뛰어넘었다.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서고, 외국 기업이 활동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실업률을 크게 낮추고 구조 조정을 이룬 결과다. 경제 쪽 가짜 뉴스를 색출한 때문이 아니다. 민족보다 실용을 택한 결과다. 그래야 한국도 일본을 뛰어넘는다. 어제 내가 사는 아파트는 광복절 태극기 게양이 5분의 1도 안 됐다. 비 탓일까. 독립문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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