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도, 버려진 돌도… 그의 손 닿으면 '따뜻한 집'이 되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8.15 03:00

[이타미 준&기린그림]
김종신·정다운 감독이 8년간 만든 다큐 '이타미 준의 바다' 오늘 개봉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원시적 자연미를 추구했던 '바람의 건축가'. 국경에 얽매이지 않았던 국제인.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1937~2011·작은 사진)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가 15일 개봉했다. 공교롭게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지금, 예술은 갈등과 대립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CGV 배급지원상 수상작으로, 조민석·김찬중을 비롯한 유명 건축가들이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기꺼이 나서는 등 건축계에서 응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건축영상제작사 '기린그림'을 운영하는 김종신(44)·정다운(44) 부부 감독이 8년의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 2006년 김종신의 고향인 제주에서 운명적 공간을 만난 게 시작이다. 이타미 준이 제주의 물·바람·돌을 주제로 그해 각각 완성한 수·풍·석(水·風·石) 미술관. 최근 서울 예장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들은 "인간이 약하고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임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지었다는 느낌이면서도 따뜻했다"며 "거기서 받은 위로와 감동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대가였던 이타미 준을 선뜻 찾아갈 엄두를 못 내다가 신문에서 부고를 보고서야 '더 미루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딸 유이화 건축가를 비롯한 가족·친지, 건축주, 한·일 양국 건축계 인사들이 본 이타미 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타미 준 영화라면 음악은 (재일 한국인인) 양방언이지"라는 생각에 무작정 페이스북으로 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양방언은 30분 만에 답을 보내왔고 출연까지 승낙했다. "이타미 선생님은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아버지가 제주 출신인 양방언 선생님도 '프린스 오브 제주'라는 곡을 만들었죠. 두 분이 예술가로서 교감하는 지점이 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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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타미 준의 대표작인 제주 수(水) 미술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물, 그림자를 느끼게 했다. 화면의 인물은 건축가의 일생에 대한 은유로 등장하는 어린이(왼쪽)와 작곡가 양방언. ②기린그림의 정다운(왼쪽)·김종신 부부 감독. ③제주의 지붕과 마을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포도호텔. /영화사 진진·고운호 기자
이타미 준은 경계인(境界人)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때론 차별을 받으면서도 평생 귀화하지 않았다. '유(庾)'라는 성의 한자가 일본에선 쓰이지 않아 이타미 준(伊丹潤)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과거 일본 국제공항이었던 이타미(伊丹) 공항에서 성을, 절친했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潤)에서 이름을 따왔다.

영화의 인물들은 그가 "마음속에 깊은 어둠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늘 속에서 다양한 빛을 보는 눈이 있었고, 내면의 어둠을 뛰어넘어 장엄한 우주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짙은 그늘 같은 장치를 과감하게 활용했던 그의 건축 또한 야성적인 동시에 인간미가 따뜻했다고 평가받는다. 시간을 머금고 사람의 숨결을 품는 재료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버려질 뻔했던 대학로 시절 서울대 도서관 벽돌을 선생님은 자비로 도쿄까지 옮겨와 '트렁크'라는 바(bar)에 썼어요. 학생들의 열정이 밴 재료가 사라지게 둘 수 없었던 거죠."

주인공의 부재(不在)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이타미 준의 공간과 관련 인물들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온양미술관(1982), 석채의 교회(1991), 포도호텔(2001), 방주교회(2009) 같은 대표작이 등장한다. 작품을 시간 순으로 다루지 않아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퍼즐의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듯 후반부로 갈수록 이타미 준이라는 인물과 작품 세계가 총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기린그림은 장편 다큐멘터리 외에 건축가들의 작업을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전시용 영상을 만드는 일도 한다. 영상은 건축물이 빛과 계절에 조응하며 모습을 달리하는 장면까지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어 최근 각광받는다. 이들은 "영상은 많은 사람에게 똑같이 전달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지는 민주적 매체"라며 "좋은 공간이 가진 힘과 가치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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