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듣고 나면, '외모 덕'이란 말 안 나올걸요

조선일보
입력 2019.08.15 03:00

뮤지컬 '벤허' 주인공 민우혁

"축하해, 네가 이겼어!" 운명을 건 전차 경주가 끝나고 벤허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원수 메셀라는 이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몸에 칼을 꽂는다. 어릴 적 한집에서 자란 친구였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벤허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그다. 하지만 메셀라의 최후를 바라보는 벤허 역 민우혁(36)의 얼굴엔 어쩐지 통쾌함보단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2017년 뮤지컬 '벤허' 초연에서 악역 메셀라를 맡아 '인생 캐릭터'란 평을 들었고, 지난달 30일 개막한 재연에선 주인공 벤허로 '승격'된 그는 "이 장면에서 늘 눈물을 참느라 힘들다"고 했다. "부모를 잃고 벤허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메셀라 입장에선, 아무리 잘해준들 어떻게 마음이 편했겠어요. 화목한 식구들 모습마저 상처가 됐겠죠. 메셀라가 비뚤어진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복수에 성공해도 마음이 아파요."

민우혁은 '내 공연을 보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던 관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민우혁은 "내 공연을 보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던 관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고전 영화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제정 로마 시대 유대 귀족에서 한순간에 노예로 굴러 떨어진 벤허가 온갖 고난을 담대하게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린 창작 뮤지컬. 초연 당시 매끄러운 전개와 로마·예루살렘을 재현한 무대 연출로 호평받았고,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과 무대예술상을 수상했다. 벤허 캐릭터에 맞춰 10㎏을 빼고, 검술까지 배운 민우혁은 "가장 힘들었던 건 매 순간 뒤바뀌는 벤허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유대 민족의 평화를 꿈꾸던 청년이었지만, 이후엔 메셀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죠. 그가 죽은 뒤에는 메시아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버티고요. 고통과 분노, 희망을 오가는 그 심리를 장면마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숙제입니다."

서른 살에 뮤지컬 '젊음의 행진'으로 데뷔한 '늦깎이'지만, 민우혁은 최근 뮤지컬계에서 가장 무섭게 상승세를 타는 배우다. 2015년 '레미제라블'로 첫 대극장 주역을 맡은 뒤, '아이다'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드 하이드' 등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작품의 주인공을 몇 년 새 줄줄이 꿰찼다. '준수한 외모 덕 아니냐'는 오해도 있지만, 가창력과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일. 실제로 한 노래 경연 방송에서 최다 연승을 할 정도로 탄탄한 노래 실력을 자랑한 그는 "'목소리를 듣고 나니 얼굴이 안 보인다'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기분 좋다"며 웃었다.

한때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지만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지 6개월 만에 부상으로 은퇴했고, 이후 10년간 무명 가수로 살았다. 민우혁은 "그래서 벤허라는 역할이 유난히 애틋하다"고 했다. "20대 내내 꼭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벤허의 인생을 그리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당시의 감정을 꺼내 쓰고 있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비로소 평화를 얻는 벤허 덕분인지, 이젠 그 시절에 감사하단 생각도 듭니다." 10월 13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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