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7개 병원 의료진 "경찰이 시민 죽이려해" 시위 동참

입력 2019.08.14 03:00

[오늘의 세상] 中 환구시보 최고위 인사 "홍콩 상황 악화땐 베이징이 개입할 것"
美 볼턴 "中, 반환협정 지켜라"… 中 즉각 반박 "외세에 굴복 안해"

전날 오후 홍콩 국제공항을 마비 상태에 빠뜨린 뒤 퇴각했던 홍콩 시위대는 13일 오후 2시쯤부터 다시 공항에 몰려들었다. 시위자들은 공항 카트나 캐리어를 끌고 항공사 카운터나 탑승구로 이동하려는 공항 이용객들을 막아섰다. 광둥어를 쓰는 한 여성은 시위대 틈바구니에서 캐리어를 머리 위로 든 채 "나는 집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시위대 사이에선 "꺼져라!"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공항 직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시위 대열 밖으로 나온 이 여성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자녀와 함께 홍콩에 왔던 한 태국인 부부는 자신들을 막는 시위대를 향해 "우리는 당신들의 정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저 귀국하고 싶을 뿐이다. 어제도 당신들 때문에 못 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홍콩의 한 병원에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의사와 간호사들이 13일(현지 시각)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이날 홍콩 내 최소 7개 병원 의료진 수백 명이 11일 경찰이 발포한 빈백탄(콩주머니탄)에 한 여성 시위자가 맞아 실명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한 병원에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의사와 간호사들이 13일(현지 시각)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이날 홍콩 내 최소 7개 병원 의료진 수백 명이 11일 경찰이 발포한 빈백탄(콩주머니탄)에 한 여성 시위자가 맞아 실명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시위자 중에는 오른쪽 눈을 안대나 붕대로 가리고 그 위에 '홍콩 경찰이 홍콩 시민들을 살해하고 있다' '우리에게 눈을 돌려 달라'는 글귀를 적은 이들이 적잖았다. 지난 11일 밤 홍콩 도심에서 경찰이 쏜 빈백탄(beanbag rounds·콩주머니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한 여성에 대한 연대와 경찰에 대한 항의를 의미하는 시위였다.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자 3명이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침입해 12명을 살해하자 프랑스 시민들이 '내가 샤를리 에브도다'라는 팻말을 들고 언론 자유를 위한 연대 시위를 벌였던 것을 연상시키는 행위였다. 경찰의 시위 진압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배경으로 홍콩 방문을 경고하는 게시물도 소셜미디어에 급속히 번졌다. 영어·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된 경고 문구는 '당분간 홍콩에 오지 말라. 홍콩은 안전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홍콩 침사추이 경찰서 인근에서 11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빈백탄에 맞아 쓰러진 여성이 오른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홍콩 침사추이 경찰서 인근에서 11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빈백탄에 맞아 쓰러진 여성이 오른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홍콩 명보
공항 마비까지 불러온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의 경고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양광 대변인은 첫 공항 점거 사태가 벌어진 지난 12일 "11일 홍콩 극소수 폭도가 여러 경찰서에 화염병을 투척해 경관이 다쳤다"며 "이는 심각한 폭력 범죄이자 테러리즘의 징후"라고 경고했다. 13일에는 중국 환구시보 총편집 후시진이 트위터에서 "중국 무장 경찰이 선전에 집결하고 있는 동영상이 퍼지고 있다"며 "홍콩 상황이 악화될 경우 베이징이 개입할 것임을 명백히 경고한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시위대가 홍콩의 법치를 파괴하고 홍콩을 멸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공항 점거를 촉발한 여성 시위자의 실명 사태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가이드 라인을 준수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물리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이은 경고가 무색하게 시위대는 13일 또다시 공항을 점거했고, 홍콩 7개 병원 의료진은 '홍콩 경찰이 홍콩 시민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의 경고와 위협이 강해질수록 분노한 민심이 더 강하게 반발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자 미 정치권 등은 중국의 무력 개입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에 간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영국 당국자와 홍콩 반환 당시 영국과 중국이 맺은 협정을 거론하며 "협정을 이행하는 것은 중국의 의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2일(현지 시각) 전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미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이날 트위터에서 "홍콩 시민들은 용감하게 중국 공산당에 맞서고 있다"며 "어떤 폭력적인 단속도 전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홍콩에서 정당한 우려를 가진 사람들을, 매우 신중하고 매우 정중하게 다룰 것을 중국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홍콩 주재 중국 외교부 사무소 대변인은 13일 "미국 일부 정객이 중국과 홍콩 정부를 헐뜯으며 극단 폭력 분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주권과 홍콩의 번영 및 안전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누구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외세의 위협과 압력에 굴복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빈백탄 구조도

☞빈백탄(Beanbag rounds·콩주머니탄)

둥근 모양의 탄두를 가진 비살상용 탄환. 대부분의 빈백탄 안에는 작은 납 알갱이로 채워진 주머니가 들어 있으며, 빈백탄을 쏘면 이 주머니가 목표물을 강타한다. 지난 11일 홍콩 시위에서 한 여성이 경찰이 쏜 빈백탄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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