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54] 새로운 기술의 덫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9.08.14 03:1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 인류의 부를 그려본 그래프를 교과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1만년 전 농업을 시작하며 정착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끝없는 가난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1만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회·경제적 발전이 없었던 걸까?

한때 고전경제학에선 '맬서스의 덫'을 답으로 제안했다.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생산성을 향상시키지만, 동시에 증가한 인구는 삶의 질과 소득을 다시 낮춘다. 그런 탓에 인류는 빈곤이라는 '덫'에 영원히 갇혀 살아야 한다는 비관적 가설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맬서스의 덫에서 탈출하지 않았던가? 왜 하필 18세기 영국이었을까?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 교수는 최근 '기술의 덫'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기술 혁신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혁신적인 기술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대규모 일자리 파괴는 사회 혼란과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유럽 귀족 대부분은 정체된 사회에서 권력 유지하기를 선호했기에 신기술 도입을 금지했지만, 17세기 이미 무역과 산업을 하기 시작한 영국 지배층은 대규모 일자리 파괴와 혼란을 감수했다는 것이 프레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침략과 약탈을 제외한 역사적 국가 경제 발전은 기술 혁신을 통한 대규모 일자리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막상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경제 발전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지 못한다. 일자리 파괴를 통해 얻은 경제적 혜택은 수십 년 후에나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부는 과거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미래 대한민국의 부는 지금 우리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현재와 미래 세대 간 타협과 공생을 위한 제도적 혁신에 달려 있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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