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환경단체와 환경부의 '제철소 협공' 그 후

입력 2019.08.14 03:17

블리더 오염은 전체의 '만분의 1' 비중 불과… 美서도 '無규제' 확인
환경단체에 휘둘린 환경부 '범법' 유권해석, 기업들 '집단 괴롭힘' 당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 포스코의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에 대한 관할 충남·경북·전남도의 '조업 정지 10일' 처분을 놓고 한동안 들끓었다. 제철소가 고로(高爐·용광로) 정비 때 고로 상부의 안전 밸브인 블리더(bleeder)를 열어 내부 연소 가스를 빼내는 일이 대기환경보전법에서 금지한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은 오염 배출'에 해당한다는 환경 단체 고발로 비롯된 사단이었다. 환경부는 행정처분권을 가진 지자체의 질의에 '고로 정비는 화재나 폭발 방지 등 법이 인정한 비상(非常) 상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블리더 오염 배출은 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줬다. 그러자 철강업계가 "대부분 수증기이고 전 세계 제철소가 해온 일인 데다 대체 기술도 없다"고 반발했다. 조업 정지 10일이면 쇳물이 굳어 고로 복구에 3개월이 걸리고 고로당 8000억원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6월 환경 단체, 철강업계, 전문가, 지자체, 정부 관계자들로 민관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협의체는 그간 해외 조사와 함께 여섯 번 모임을 가졌고 다음 주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이 사안의 핵심은 블리더 작동 시 배출 오염이 얼마나 되는지와 대체 기술이 없다는 업계 주장이 사실인지의 두 가지다. 우선 국립환경과학원에서 고로 블리더 작동 시 드론을 날려 오염물질을 포집, 분석해봤다. 그 결과 세 곳 제철소의 블리더 주변 공기 ㎥당 27·40·47㎎의 소량 먼지가 확인됐다. 그러나 배출구에서 나와 이미 확산된 상태의 농도여서 참고치 의미밖에 없는 수치였다. 그다음 환경과학원은 미국 환경청의 이론식에 따라 최대 가능 농도(1만5000㎎/㎥)를 적용해 배출량을 추정해봤다. 블리더를 통한 연간 먼지 배출량이 포항제철 1.7t, 광양제철 2.9t, 당진제철 1.1t으로 계산됐다. 세 곳 제철소의 굴뚝 자동 측정기 관측량(제철소당 연 1만7000~2만3000t)의 1만분의 1 수준이었다. 제철소 자체는 거대 오염원이라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블리더 비중은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협의체는 7월 22~26일 13명의 참관단을 꾸려 미국 환경청 시카고지역본부와 세계 1위 철강 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의 인디애나 하버제철소를 방문했다. 참관단은 그곳 관계자들로부터 블리더 개방에 관한 별도 규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블리더 오염을 줄이는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철강업계는 용광로 200개 설계 경력을 가진 룩셈부르크의 폴루스(Paul Wruth)사에 기술 용역을 의뢰해 비슷한 내용의 답변을 들었다.

환경 단체들의 제철소 블리더 오염 고발은 정보 확보 수단이 제한적인 NGO 활동 차원이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환경부가 지자체 질의에 '블리더 개방은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한 점이다. 환경부 장관 역시 간담회에서 "관례적으로 해왔다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실정법 위반"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지자체는 자동으로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6개월 이내 배출 시설 조업 정지' 처분을 하게 된다. 법에는 '국민경제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을 때는 2억원 이하 과징금으로 대신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근거해 고로당 6000만원씩 과징금 부과 방안이 거론돼 왔다. 제철소들이 수용할 경우 국내 12개 제철소 고로는 연간 6~8회 블리더를 열 때마다 6000만원씩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 모든 제철소가 하는 일이 한국에서만 범법(犯法)으로 처벌받게 된다.

환경부가 유권해석 전에 철강업계 설명을 귀담아듣고, 배출 오염량을 검증해보고, 외국 사례도 조사한 후 신중하게 대처했다면 이번 소동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금방 별것 아닌 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성급한 유권해석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이 문제는 결국 환경부 시행 규칙이나 지자체 관리 규정을 고쳐 '블리더 개방은 합법'이라 인정하는 걸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민관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수천억원대 오염 저감 추가 투자 의사를 표명했다. '1만분의 1'에선 오염을 줄일 수 없지만 나머지 '9999'에서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뺨 한 방 맞은 쪽이 앞으로 더 때리지 말아달라고 되레 합의금을 내놨다. 오염을 줄이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일의 순서가 이렇게 돼도 괜찮나. 환경부가 막강 규제 재량권을 갖게 되는 '환경오염통합관리법'이 2021년 시행된다. 기업들이 벌써부터 환경부와 환경 단체가 눈을 부라리면 다리를 후들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KAIST 교수가 블리더 사태를 놓고 "환경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정부가 장악돼 있다"고 코멘트했다. 이 정부가 임명한 두 명의 환경부 장관 모두 환경 단체 경력자다. 교수 논평이 과녁을 제대로 맞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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