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등소평, 광해군, 서희의 공통점

조선일보
입력 2019.08.14 03:15

외교는 '명분'보다 '실리' 우선, 우리에게 日은 예외적 존재
언젠간 실리와 절충 시점 직면… '외규장각 협상' 돌이켜볼 만

임민혁 논설위원
임민혁 논설위원

'명분'과 '실리'가 완전히 일치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그 길로 가면 된다. 하지만 현실 외교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한쪽을 선택하거나 중간 지점에서 절충해야 한다. 최근 한·일 갈등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던 공무원 지인(知人)은 2011년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 사례를 언급하며 이 화두를 던졌다.

조선 왕실의 중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겨 기록문화의 꽃으로 평가받는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군에 약탈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이다. 이는 재불(在佛) 사학자 박병선씨가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발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이를 돌려받으려 했지만 20여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 현행법이 약탈 문화재도 모두 자국 공공 재산으로 취급해 소유권 이전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내에서는 '명백히 도둑맞은 문화재이니 계속 조건 없는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명분론과 '일단 대여 형식으로 들여오자'는 실리론이 맞섰다. 결국 외규장각 도서 296권은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영구임대' 방식으로 2011년 한국에 돌아왔다. 명목상 여전히 프랑스 소유라서 우리가 국보·보물로 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및 연구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당시 명분론 쪽에 서 있던 이 공무원은 "돌이켜보면 우리가 계속 완전한 반환을 주장했으면 아직도 못 돌려받지 않았을까. 결국 지금 우리 수중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외규장각 도서 예를 빌리지 않더라도 명분과 실리가 충돌할 때는 실리를 택하는 것이 보통 더 지지를 받는다. 최소한의 겉포장만 갖출 수 있다면 철저하게 내용물을 추구하는 것이 정글 같은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광해군의 중립외교, 서희의 강동 6주 담판 등이 이런 맥락에서 모범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본' 이슈는 이 통념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적 존재다. 가혹한 식민 지배에 대한 한(恨)이 DNA에 각인돼 있는 데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妄言)이 보태져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실리를 위한 타협=굴욕·매국'이라는 게 일반적인 국민 정서다. 그냥 사과도 안 되고 '진정성 있는 사과'여야 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때 정부는 아베 정권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대치를 받아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억엔에 국가 자존심을 팔아먹었다'는 여론에 합의는 공중분해됐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촉발된 현재 한·일 갈등에서도 청와대와 정부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무역 보복이라는 부당한 칼을 빼들었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도 정부도 애초에 우리가 대법원 판결만 내세워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 주도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외교적 절충안을 모색했던 것이다. 한·일 기업이 같이 배상 재원을 마련하자는 '1+1 해법'만 해도 일본 기업에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 취지하고 맞지 않는다. 이 안을 들고 일본에 가서 제안한 외교부 차관은 청와대 전 수석의 논리대로라면 이적·매국 행위를 한 것인가.

지금 불가피하게 거대한 명분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실리와 절충해야 할 시점이 온다. 그때는 부디 시대착오적 이분법 같은 선동에 기대지 말고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전문가들의 고언에 귀 기울여 돌파구를 찾길 바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도 당시에는 '굴욕'이라는 욕을 먹었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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