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쓰레기통에 들어간 미국의 가치

조선일보
입력 2019.08.13 03:16

미국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는 2015년 "트럼프의 언행은 정치면이 아니라 연예면에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주자로 떠오르며 "멕시코가 미국에 보내는 사람은 성폭행범" "오바마는 (국제 테러 조직) IS 창시자" 등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시기다. 이 매체는 "이런 헛소리를 진지하게 다뤄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유력해지자 5개월 만에 "더 이상 그를 연예면에서만 다룰 순 없다"며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워싱턴에서 백악관 대변인은 '극한 직업'으로 불린다. 트럼프 발언은 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사실관계가 틀리는 것은 기본이다.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트럼프가 골프 중 속임수를 쓴다고 누가 폭로하자 트럼프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역공했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다들 나를 속이기 때문에 나도 방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백악관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거짓말 아니면 강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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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정상들도 피해갈 수 없다. 재작년 말 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아시아 나라를 방문했을 때 방위비 문제를 꺼냈더니 그들이 나를 이렇게 봤다"고 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다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굴렸다. 아시아에서 방위비 문제가 걸려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트럼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낮다"고 했고, 영국 메이 총리에게는 "영국이 곧 새 총리를 뽑는다니 반갑다"고 했다.

▶트럼프의 동맹 조롱이 최근 다시 이슈가 됐다. 지난주 한 행사에서 한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아파트 임대료 수금에 빗대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발음·억양을 흉내 냈다는 것이다. 동맹에 대한 천박한 인식도 문제지만, 아시아인 악센트를 따라 하는 것은 인종차별의 사례다. TV 프로 진행자가 해도 징계받을 일을 미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한다. 상당수 미국인은 이런 그를 좋아한다고 한다.

▶캐나다의 한 정치인은 "트럼프 입이 대량 살상 무기"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 대통령이다. 미 행정부에서 치기 어린 트럼프를 바로잡으려던 '어른들의 축'도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어린아이가 개구리를 향해 마구 돌을 던진다. 아이는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죽는다. 자유세계를 위해 피를 흘린 미국은 존경을 받았다. 그 '존경'이야말로 미국의 힘이었다. 지금 미국의 '가치'는 존경은커녕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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