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빙상 메달에 달린 '까방권'

입력 2019.08.13 03:13

윤동빈 스포츠부 기자
윤동빈 스포츠부 기자

'이 선수는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획득하셨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거나 전 국민이 몰입한 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안겨준 선수의 뉴스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이 선수가 앞으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한 번은 봐주자'는 의미에서 팬들이 부여한 일종의 '면책 특권'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세운 스포츠 영웅이라 해도 그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빛나는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도, '국민 타자' 이승엽과 추신수도 한 번 도마 위에 오르면 강약 조절 없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유독 빙상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만 따면 '평생 까방권'을 얻었다고 믿는 듯하다. 2014 소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지난 6월 태릉선수촌에서 소주와 맥주 10병을 나눠 마셨다가 술병을 발견한 청소 용역 직원의 신고로 적발됐다. 근육 잘 키우라고 국민 세금으로 매 끼니 3만5000원짜리 식사를 먹여 놨더니, 운동하고 쉬어야 할 시간에 술판을 벌인 것이다. 게다가 이날은 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남자 쇼트트랙 선수가 여자 선수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남자 동료의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노출시킨 사건으로 쇼트트랙 대표팀이 '한 달간 선수촌 퇴촌'이란 징계를 받은 지 불과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뉴스 검색 기간을 최근 5년으로 넓혀보면 더 경악스러운 내용이 뜬다. 구타와 폭언, 성폭행, 숙소 침입, 불법 도박…. 유독 얼음판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2014년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지도자는 당초 영구제명에서 자격정지 3년으로 감면됐다. 한 남자 쇼트트랙 선수는 고등학생 때 태릉선수촌 이탈 및 음주(2015년), 도박 사이트 베팅 혐의(2016년), 여자 숙소 무단 침입(2018년) 등 사고를 상습적으로 저질렀다. 하지만 세 번 다 자격정지에 그쳤다. 이 선수는 여전히 당당하게 국제 대회에서 뛰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의 한 빙상 지도자는 "당장 국제 대회 성적을 낼 수 있는 선수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인식이 "어차피 나 아니면 안 돼"라는 빙상 선수들의 오만한 태도로 이어졌다. 이번 '선수촌 술판'을 벌인 선수들은 고작 자격정지 2개월을 받았다. 10월이면 선수 자격이 회복돼 오는 11월 ISU(국제빙상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 나설 수 있다.

이제 빙상 저변도 넓어졌다. 당장 금메달을 따다 주는 사고뭉치 선수와 지도자보다 국가대표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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