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3전 3승, 홍남기 부총리 누른 김현미 장관

입력 2019.08.11 06:00

김현미 국토부 장관, 홍 부총리 반대 뚫고 분양가상한제 발표
기재부의 정책조정권·예산편성권, 국토부 앞에서는 무력화

"김현미 장관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지 않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임(自任)하고 있지만, 여당 중진인 김 장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2.0%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발표를 앞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뚝심’에 대해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재부 외 경제부처 관료들은 김현미 장관이 분양가 상한제 등을 밀어붙이는 과정을 주목했다. 그동안 경제정책 조정권과 예산편성권을 무기로 경제부처를 지휘하며 영향력을 쌓았던 기재부의 철옹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토부는 올해 들어 기재부와의 이견이 생겼을 때마다 완승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지난 5월 3기 신도시 구상을 발표했을 때에는 고양선과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구간에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연계 교통망을 신속하게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비를 전액 부담하는 방식에 대해 기재부가 공공기관 추진 사업도 예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국토부는 지방 공기업을 사업 주체로 내세우는 방식을 검토하며 맞섰다. 양 부처는 공방 끝에 예타를 하더라도, 국토부 의도대로 ‘신속한 교통망 구축’에 협조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당시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재부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고양창릉 신도시 건설 시기에 맞춰 고양선 건설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데 양 부처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9년 7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이낙연 총리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DB
2019년 7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이낙연 총리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DB
지난 6월 버스파업을 막기 위해 버스 준공영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국토부는 기재부의 반대를 이겨냈다. 지방자치단체 소관 업무인 버스운송회사에 대한 지원을 중앙 정부 예산으로 할 수 없다는 기재부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광역급행버스(M버스)는 물론 일반광역버스까지 정부 재정으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를 전격 추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현미 장관은 일반광역버스 지원을 거부했던 홍남기 부총리를 배제하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3자 협의를 이끌어냈고, TV 생중계를 통해 준공영제 확대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는 12일로 예정된 국토부의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 발표가 홍남기 부총리에 대한 김현미 장관의 ‘3전 3승’ 완결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는 거시경제정책 전체틀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이어서 기재부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전년비)에 불과할 정도로 실물경제가 위축된 것은 상당부분 건설경기 위축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17개월 연속 감소하며 민간 경제활동 위축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신규 공급을 제약할 가능성이 큰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 택지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은 홍남기 부총리가 내세우는 ‘경제활력 제고’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게 민간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 부총리와 기재부 측이 이런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확대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경제 갈등이 전면화된 이후 일부 여당 의원이 분양가 상한제 시행 연기를 추진할 움직임을 보였지만, 김현미 장관은 오히려 청와대를 설득해 분양가 상한제 발표 일정을 못박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서울 집값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논리가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일각과 민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 조정권을 행사해서라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 논의에 제동을 걸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세종시 관가 에서는 주요 정책을 자기 뜻대로 관철하는 김현미 장관이 이낙연 국무총리의 후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내각에서 이낙연 총리 다음으로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후임으로 기용돼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 장관이 여성 총리로서 국정운영을 이끄는 게 본인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도 나쁠 것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김현미 장관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게 변수가 될 수 있다. 3기 신도시 정책 등에 대한 평가를 지역구인 고양 일산에서 받겠다는 게 김 장관의 생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장관은 국토부 장관을 하면서 존재감과 영향력을 충분히 과시했다는 점이 큰 성과"라면서 "김 장관이 차기 국무총리에 기용될지 여부는 임명권자의 선택 뿐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결단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행보만큼이나 홍 부총리의 거취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린다. 이번 중폭 개각에 이어 이낙연 총리 거취에 맞물려 연말 전 추가 개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연말까지는 경제부총리로서 예산안 편성, 심의, 국회 통과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는 여전히 그의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경험이 없는 홍 부총리가 출마를 결심할 경우 연말 이전에 공직을 떠나 출마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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