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서원이 있던 길지로 옮기면 어떨까

조선일보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19.08.10 03:00

[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자사고와 서원의 풍수

1543년 경북 영주군 순흥에 조선 최초의 서원(소수서원)이 세워졌다. 지난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소수서원이 세워지고 175년 뒤인 1718년 어느 날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는 재난을 일으킬 변괴[홍변·虹變]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조상경이 인재 등용과 서원 철폐 두 가지를 상소하였다. 반면 조영세는 서원 철폐가 무지개 변괴와 무슨 관계가 있냐며 반박 글을 올린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영귀봉. 그 앞에 흐르는 물을 염두에 두면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신다는 풍수의 영귀음수형(靈龜飮水形)이 된다.김두규 제공
경북 영주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영귀봉. 그 앞에 흐르는 물을 염두에 두면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신다는 풍수의 영귀음수형(靈龜飮水形)이 된다. /김두규 제공

두 사람 가운데 누구 말이 맞을까? 당시 대리청정을 하던 세자(훗날의 경종)는 조상경의 손을 들어준다. 왜 그랬을까? 무지개가 뜨면 해가 가려진다. 해는 임금을 상징한다. 임금을 가리는 것은 신하의 나쁜 마음이다. 따라서 무지개는 재앙의 조짐이다. 그런데 서원 철폐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서원들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그 폐단이 심해졌다. 1724년 경종 임금은 "서원 폐단이 지금 극에 달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원은 일종의 '자사고'(특목고)였다. 공립학교는 향교였다. 사립인 서원이 더 인기였다. 무슨 이유일까? 서원의 본래 목적은 교육과 성현에 대한 제사 두 가지였다. 교육 목적은 유학의 도를 함양케 함이었다. 그러나 목적이 변질되어 과거 합격자 배출이 중시되었다. 마치 최근 자사고(특목고) 폐지 이유로 '명문대 입학 학원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과 똑같다. 소수서원이 유명해진 것은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소수서원에서 4~5년 공부하면 과거 급제한다"는 소문이 났다. 입학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당연한 일. 서원도 입학 정원이 있기에 마음대로 늘릴 수 없었다. 제2의 소수서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서원 출신들끼리 학연이 형성되고 그것은 붕당으로 이어졌다. 사립학교이지만 국가의 지원과 주변 백성 착취를 통해 몸집을 키워나갔다. 서원 위세가 클수록 그곳에 사는 백성의 고통도 비례했다. 훗날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단행한 이유였다. 조상경이 무지개 변괴에 대한 방술로 서원 철폐를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지개란 다름 아닌 서원이었다.

자사고(특목고)가 서원과 다른 점이 둘 있다. 자사고는 서원처럼 권력 남용이 불가하다. 다른 하나는 서원이 시골의 길지에 자리 잡은 반면 자사고는 서울과 주요 도시에 있다는 점이다. 서원 터가 길지라는 주장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스페인 마드리드건축대학교 출신 김희곤 건축가는 '주변 산수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공간과 전망 경관'을 갖춘 곳이 서원이라고 말한다('한국의 서원').

풍수 내용 중 형국론이 있다. 사물에 빗대어 그 땅의 성격을 읽는 방법이다. 땅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동일한 장소도 다양한 형국론이 가능하다. 소수서원이 그렇다. 서원 입구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영귀봉과 그 앞을 흐르는 물을 염두에 두면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귀음수형(靈龜飮水形)이 된다. 서원 3면을 감싸 돌아 흐르는 냇물을 염두에 두면 배가 떠가는 행주형(行舟形)이 된다. 소수서원을 둘러싼 사방의 산들은 연잎처럼 부드럽다. 서원을 감싸 도는 냇물과 앞산 연화산을 참고하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형국이 된다. 하나의 땅이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땅의 재능이 많다는 뜻이다.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만 할 것이 아니라 '재활용'이 더 의미가 있다. 자사고(특목고)를 존속시켜야 한다면 도시에 두지 말고 서원이 있던 자리로 옮겨가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길지의 재활용을 통해 공동화되어 가는 농촌을 살리면서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끌 수 있다. 학생들은 국토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의미를 절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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