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처리업체 "IMF 때보다 바쁘지만… 웃을 수가 없어"

입력 2019.08.08 03:05 | 수정 2019.08.08 03:06

국세청, 작년 폐업률 역대 최저라는데… 자영업자 폐업현장 가보니

6일 오전 11시 경기 안산시 상록구 중고 주방용품 처리 업체 '갑부 주방'. 5층 규모 창고 내부가 중고 냉장고·뚝배기·조리 기구로 가득했다. 그래도 공간이 모자라 옥상과 창고 주변에도 물건을 쌓아놨다. 이 업체 박제원(56) 사장이 직원과 함께 1t 트럭을 타고 서울 노량진으로 출동했다. 이동하는 40여분간 박 사장에게 전화 일곱 통이 걸려 왔다. "커피 블렌더도 취급합니까" "얼음 분쇄기를 처분하면 20만원 이상 받을 수 있을까요" 등 폐업하는 자영업자들 목소리가 옆자리까지 들렸다. 도착한 곳은 서울 동작경찰서 주변 한 식당. 중년의 가게 주인이 "임차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세 명이 1시간 3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싱크대를 뜯어내고, 작업대, 냉장고, 식탁 등을 철거했다. 1t 트럭 화물칸 세 배 높이까지 철거한 짐이 쌓였다. 처리 업체 사장은 식당 주인에게 중고 물건값 80만원을 건넨 뒤 다시 트럭에 올랐다. 경력 20년째인 박씨는 "자영업자 곡소리는 IMF 직후보다 지금이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중고 주방용품 처리 업체 '갑부주방' 직원들이 주방 집기를 정리하고 있다.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중고 주방용품 처리 업체 '갑부주방' 직원들이 주방 집기를 정리하고 있다. 최근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갑부주방과 같은 중고 업체가 바빠지고 있다. /장련성 기자
국세청은 지난달 26일 '2019 국세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신규 자영업자가 2017년에 비해 8만2954명 늘었고, 폐업은 소폭 감소해 6830명이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일부 매체가 〈자영업 다 망한다던 사람들, 틀렸습니다〉 등의 기사를 인터넷에 걸었다. 폐업률이 11%로 '역대 최저'라고도 했다. 이를 친여(親與) 진영이 퍼뜨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과 다르다. 늘어난 자영업자 8만2954명 가운데 6만4603명은 부동산임대사업자였다. 1만279명은 '전기·가스·수도' 사업자였는데, 태양광발전 사업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늘어났다는 신규 사업자 90%가 이 두 업종에서 나왔다. 폐업률을 계산할 때 이처럼 분모(分母)에 해당하는 '사업자 수'가 늘어나면 폐업률 수치는 줄어든다. 본지가 6일 소상공인연합회에 전화를 걸어 "최근에 폐업률이 역대 최저라던데 어떻게 보시느냐"고 물었더니 상대방이 "역대 최고요?"라고 되물었다.

업종별 전년 대비 신규사업자 수 증감 현황
폐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구 수성구에서 일식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자영업자 형편이 너무 어려우면 폐업 신고도 안 한다. 폐업 신고를 하면 창업 자금 대출을 곧바로 갚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연길 세무사는 "폐업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소상공인진흥공단 컨설팅을 거쳐 폐업한 건수는 작년 한 해 4132건이었는데, 올해는 7월까지 3811건이다. 민간 폐업 컨설턴트 업체 '폐업119'의 경우 폐업 진행 건수가 작년 6월에는 84건이었는데 올해는 163건으로 불었다. 4월(44건→173건), 5월(57건→190건)도 전년 동월 대비 3~4배로 늘었다.

업체 간 경쟁도 심해졌다. 서울 광진구 철거 업체 사장은 "경기가 어려워지니 철거업계로 사람이 몰린다. 5년 전보다 10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중고값은 자연스레 떨어진다. 신우중고종합주방 정만제(54) 대표는 "소비자도 5년 넘은 물건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3년 전엔 4도어 냉장고가 40만원 정도 했지만, 지금은 30만원 선이다. 식기세척기는 40만~50만원에서 15만~20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폐업 업체 사장들은 "우리 업계가 나 홀로 호황이지만, 망해나가는 사람을 보면 웃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정만제 대표는 "작년 봄 압구정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던 40대 여사장님이 에어컨부터 장비까지 다 팔겠다고 연락이 왔다. 2억2000만원을 주고 들여왔다는데,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1200만원밖에 안 되더라"고 했다. 이어 "그 여사장이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해왔는데, 언제 차렸는지 이번에는 또 다른 카페 점포를 철거해달라더라"고 했다.

경기 부천의 한 마트 1층 카페 사장은 올해 봄 가게 열쇠를 철거 업체에 맡기며 울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중고 주방 제품 처리 업체 사장(51)은 "임대 계약을 끝낼 땐 원상 복구를 해줘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건물주에게 집기 포기 각서를 내고 몸만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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