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85] 5세 女兒 눈빛에 담긴 자신감

조선일보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9.08.06 03:09

벨기에 화가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1858~1921)가 작곡가 구스타프 케퍼의 주문을 받아 그의 다섯 살 난 딸 잔을 그렸다. 크노프와 케퍼는 브뤼셀의 미술가, 음악가, 작가 모임인 '20인회'에서 만나 함께 전위예술을 논하던 사이다.

페르낭 크노프, 잔 케퍼의 초상,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0x80㎝,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페르낭 크노프, 잔 케퍼의 초상,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0x80㎝,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정사각형 그림 틀 속에는 수많은 직사각형이 있다. 문틀과 문짝, 그 안의 창틀, 창틀 아래의 네모난 장식과 바닥에 이르기까지 온통 곧게 뻗은 직선 가운데 작은 몸집의 어린아이가 파묻히듯 서있는 것이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곱게 싼 모자, 옅은 갈색 톤의 코트와 색을 맞춘 하의, 완벽하게 묶은 칼라와 구두 리본을 보면, 그 부모가 얼마나 공들여 아이를 차려입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버릇처럼 리본 끝자락을 붙잡은 잔의 가느다란 엄지손가락은 어른들 세상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아이 심리를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딛고 선 바닥도 그림틀과 평행이 아니라 살짝 빗나간 사선이라 흔들리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에 난 열쇠 구멍이 유난히 뚜렷하다. 크기도 큰 데다가 밝은 민트색 문짝과 대비되는 옅은 갈색이 잔이 입은 코트색과 똑같아서 금방 눈에 들어온다. 아이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열쇠 구멍은 아직은 스스로 드나들 수 없는 어른들 세상과 통해 있다. 하지만 앙다문 입술과 똑바로 그림 밖을 쳐다보는 당찬 눈빛에서는 은근히 고집스러운 어린이의 자신감과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가. 크노프는 현실 아래 감추어진 개인의 내면과 환상을 표출하는 상징주의 화가다. 잔은 자라서 성악가가 됐다. 크노프가 포착한 또렷한 눈빛 속에 이미 두려움을 떨치고 큰 목소리를 내는 어른 잔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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