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신고리원전 5·6기, 또 멈출 위기..."주52시간 임금 부담 책임져라" 하도급업체들 '공사중단' 예고

입력 2019.08.04 12:03 | 수정 2019.08.05 09:55

文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수난 겪는 ‘신고리 5·6호기’
하도급업체 30여곳, 줄도산 위기에 또 공사중단하나
주 52시간에 최저임금 인상까지…"월 2~3억씩 적자"
한수원·시공사에 "대책 안 내놓으면 공사 중단할 것"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성형주 기자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성형주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건설 중단 위기에 빠졌던 ‘신고리 원전 5·6기 건설 사업’이 또다시 멈춰설 위기에 놓였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근로자들의 줄어든 임금을 보전해오던 하도급 업체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며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공사(한수원)와 원청업체인 삼성물산 등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하도급업체들은 오는 5일까지 한수원 등이 근로자 임금 보전 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공사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한수원과 삼성물산 측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업체 한 임원은 "신고리 5·6호기 현장에서만 회사별로 매달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2억~3억원씩 적자가 발생한다. 이대로 가면 모두 줄도산(倒産)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수원이든, 원청업체든 다들 정부 눈치만 보면서 우리보고 나가 죽으라고 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야 사업 포기하고, 적자 보면 되지만 일자리를 잃게 될 수천 명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푸념했다.

2017년 10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 직후 모습. /성형주 기자
2017년 10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 직후 모습. /성형주 기자
◇탈원전 정책에 공사중단 이어 ‘주 52시간’ 폭탄까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사는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 한화건설 등이 컨소시엄으로 시공을 맡아 종합공정률 46.7%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는 토목과 건축, 전기, 기계, 설비 등 30여개 크고 작은 하도급업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6년 6월 총사업비 8조6000억원 규모로 착공했으나 이듬해 7월부터 사실상 공사가 중단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 공사를 중단시키고 건설할지, 말지를 ‘공론화’에 부쳤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가 꾸려지고 공청회 과정을 거치는데 4개월여가 걸렸다. 그해 12월 결국 공사는 재개됐다. 공사 중단 여파로 준공 시점은 당초 2022년 10월에서 5개월 미뤄졌고, 하도급업체들은 적자만 250여억원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공사와 하도급업체들은 이미 발생한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불철주야 공사를 진행했다.

이러던 중 작년 7월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다. 공사 현장은 오후 5시 30분만 되면 일제히 멈춰 섰고 준공일은 또다시 2024년 6월로 15개월 미뤄졌다. 추가근무나 철야작업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일당으로 임금을 받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줄자 1인당 월 150만~200만원 정도 적게 받게 된 것이다. 이 정책 시행 첫날 현장 근로자 일부는 파업했다. 줄어든 만큼 일당을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이에 대해 하도급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원전 건설 공사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고난도 공사여서 숙련공들이 이탈하면 이 자리를 메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옮기면 그만큼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면서 "적어도 정부나 발주처, 원청업체 등이 대안을 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우선 부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 종합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신현종 기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 종합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신현종 기자
◇숙련공들 떠나는 신고리 5·6호기…주민들 "안전 우려"
토목 분야 하도급업체인 A사는 하루 200여명을 원전 건설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숙련공의 30%가량이 나가버렸다. 임금을 일부 보전해줘도 근로자들은 ‘야근수당’ 등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가버린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야근을 못 하게 되니 근로자들은 원전 공사장보다 일당이 높거나 별도의 수당이 있는 현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원전 현장은 현장을 감독하는 한수원과 삼성물산 측이 사실상 현장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일을 더 시키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4월엔 하도급업체 B사가 결국 도산했다. 근로자들의 임금 부담은 종전보다 20%가량 올랐는데, 발주처나 원청업체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다 보니 매달 적자가 쌓여 버티지 못했다는 게 주변 업체들의 설명이다. 업체들은 "다른 회사들도 대부분 도산 문턱까지 다다랐다"고 했다. 대형 하도급업체 C사 임원은 "정부 대책을 기대하며 월 2~3억원씩 손해를 감수해 누적적자만 80억원에 달한다"면서 "정부는 모르겠다는 입장이고, 발주처나 원청업체는 ‘이해는 하지만 정부 방침 때문에…’라며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뀌면서 2016년 계약 당시와 조건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조건이라면 애초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원전 현장에서만 14년간 일하다가 작년 9월 신고리 5호기 건설 현장을 떠난 숙련공 황모(45)씨는 "원전은 1급 국가 보안 시설이라 휴대전화 사용도 통화 외에 전부 제한되고 출입도 까다로운 데다 설계가 복잡해 한 공정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현장"이라며 "그나마 5~6년씩 장기공사가 기본이어서 고용안정 때문에 다들 일해왔는데, 임금마저 줄어드니 이제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반대 집회 현장. /박상훈 기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반대 집회 현장. /박상훈 기자
숙련공들이 떠난 자리는 비숙련공이 채우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원전 전문가들은 안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건설업자인 김호신(55)씨는 "복합 구조물인 원전은 도면 자체가 복잡해 최소 5년 이상은 같은 일을 해야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 한형모(62)씨는 "원전 건설사들은 공사 후 떠나면 그만이지만, 원전을 평생 옆에 두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 입장에선 경험이 많은 근로자들이 떠나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고 했다.

◇"한수원도, 삼성물산도 정부 눈치만…대책 없으면 중단해야"
하도급업체들은 최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발주처인 한수원, 시공 주관사인 삼성물산 측에 "임금 보전금을 공동 부담해 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오는 5일까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하도급업체들 요구를 지원해 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시공사를 통해 하도급업체들의 요구 사항을 검토 중"이라면서 "임금 보전분은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어서 업체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고,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공사 기간이 연장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된 간접비 등을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시공사들은 "하도급업체의 고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검토 중이다"면서 "원전 건설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주 52시간 시행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정부 측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하도급업체들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임금은 주던 대로 주고 공정 속도는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까지 인상돼 비용 부담은 더 커졌다는 것이다. 하도급업체 한 관계자는 "2017년 공사가 중단됐을 때도 근로자들을 현장에 대기시키면서 약 5개월 동안 임금을 지급했는데, 이때는 정부가 직접 나서 지원을 해 줬었다"면서 "이번에는 정부가 왜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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