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존도 90% 넘는 화학·기계·車부품·비금속 '초비상'

입력 2019.08.02 01:45

[위기의 한국] 日, 1100개 품목 수출규제 초읽기

한국 대기업들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설마했던 '화이트리스트' 공포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는 수출 때 허가를 면제해주는 우방 국가를 의미한다. 일본이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1100개 품목에 대해 강화된 수출 규제가 적용된다. 우리 기업들이 이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건건이 일본 부품으로 만드는 제품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디에 팔지를 증명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임의대로 판단해 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주력 산업 업종 대부분이 규제 영향권에 들게 돼 후폭풍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기계·자동차 부품·비금속 등 48개 주요 수입 품목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전체 수입액 중 일본 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관계자는 "일본이 허가받으라면 모두 받아야 하고, 허가 여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상황"이라며 "일본이 비관세 장벽 무기를 통해 한국 기업 명줄을 쥐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일본의 규제 범위와 방식에 따라 몇 달 안에 공장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10대 그룹 임원은 "지난달 1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부품 수출 규제를 발표 했을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비상 걸린 한국 대기업

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社)는 지난달 말 율촌화학·BTL첨단소재 등 국내 배터리 파우치필름 제조사와 접촉에 나섰다.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는 배터리를 감싸는 핵심 부품인 파우치 필름을 전량 일본 업체에서 수입해왔는데 화이트리스트 규제가 현실화하자 부랴부랴 국내외 생산업체와 접촉하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업체 관계자는 "제품 테스트를 해보니 국내·중국산은 품질이 낮아 대체가 사실상 불가능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A급 파우치를 생산하는 기업은 일본 DNP와 쇼와덴코뿐이다.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품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내산 부품을 쓰려면 자동차 업체들과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해 당장 우리 마음대로 부품을 바꿀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배터리 업체들이 보유한 주요 부품 재고는 한 달 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해외에 있는 우리 업체 공장으로 가는 수출길까지 막는 방식으로 부품 수출 규제를 하면 배터리 생산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

◇반도체·스마트폰 부품 재고 확보 총력

일본의 대(對)한국 규제 강화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반도체 업계다. 이미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한 방 얻어맞은 반도체 분야에서는 원판인 웨이퍼, 반도체에 회로를 그릴 때 필요한 마스크 등의 핵심 소재까지 수출이 규제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본의 신에쓰와 섬코가 웨이퍼 세계 시장 점유율 57%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일본 법인과 구매팀을 총동원해 일본이 어떤 소재를 추가 규제할지를 알아보고 있다"며 "일본산 외에 다른 소재 구입처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공작기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수치제어반(CNC), 고전압용 콘덴서 등을 수출 허가 물품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이 품목들은 1차적으로 수출 규제가 강화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매팀과 협력사들이 실시간으로 긴밀하게 협의하고 수시로 확보된 재고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일본 무라타에서 스마트폰 제조를 위해 일부 공급받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전기가 일정하게 흐르게 하는 부품)를 대체하기 위해 계열사인 삼성전기가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지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정유·철강… 연쇄 공포감 확산

정유업계 판매 담당자는 "현대차 부속은 현대차 순정부품을 써야 망가지지 않는 것처럼 일부 정유 공장에도 특정 촉매는 일본산만 쓰도록 설계돼 있는데 수입이 막히면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리 발주를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진복합소재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수소저장용기에 일본산 탄소섬유를 써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진이 효성첨단소재가 생산한 탄소섬유의 안전도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인증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며 "수소차 생산에 일부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경우 금속분리판 등 수소차용 부품을 생산해 온 현대제철까지 연쇄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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